요즘에는 출근이나 등교를 하자마자 되돌아 나오고 싶은, ‘집에 가고 싶다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집이란 거친 세상사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곳이자 안락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공간이니, 일이 벅차고 마음이 고될 때는 누구나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현실의 집이 영 편치 않다는 말이다.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애벗 풀러 그레이브스(Abbott Fuller Graves·1859~1936)는 유난히 집의 입구를 즐겨 그렸는데, 그 집이야말로 집에 있는데도 가고 싶을 만한 곳이다. MIT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화가로 전향한 그는 유럽에서 고전적 화풍과 인상주의를 고루 배워 꽃과 정원의 화가로 입지를 다졌다. 보스턴의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근교 메인주(州)의 휴양 도시에 거주했던 그레이브스의 집들은 한결같이 전형적인 ‘연방양식건축’이다. ‘연방양식’이란 미국이 독립해 연방국이 된 직후부터 공공건물에서 민간주택에 이르기까지 신축 건물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양식이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 건축을 따라 단정한 기둥이 반복되며 대칭을 이루어 질서정연한 고전주의 양식을 당대 사정에 맞게 절충했다. 건물 중앙의 계단, 기둥이 받치고 있는 현관, 문 위의 반원형 장식유리, 육중한 현관문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배치된 격자무늬창문 등은 지금도 미국 동부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토록 고운 꽃밭의 환대를 받으며 단정하고 견고한 저 문을 열면, 그 안에서는 틀림없이 소란한 바깥일을 잊고 안락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역세권에 자가(自家)라면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