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켜고 수신된 문자를 확인했다. 보건소에서 온 문자가 있었다. “임명묵님은 PCR 검사 결과 양성입니다.” 이미 주변에 확진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도 확진자가 되었음을 확인할 때에는 감상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확진 첫날은 은근히 바빴다. 전화를 돌려 이전에 나와 만난 주변인들에게 밀접 접촉자가 되었음을 알리고, 잡혀 있던 약속을 취소하며 양해를 구하고, 보건소에 전화해 이것저것 보고하니 하루가 금세 지났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다. 백신도 2차까지 다 맞았고, 위험군도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히 회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남은 9일 동안 펼쳐질 격리 생활이었다. 평소에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격리는 9일 동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강제한 셈이었다.
당초 내가 격리 생활 동안 계획한 활동은 독서였다. ‘그래, 그동안 책을 많이 못 읽었으니 집에 있는 동안 밀린 독서를 열심히 하자’, 이게 당시 내가 품었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원대한 계획과는 달리 격리 기간에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이었다.
격리가 나한테는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계획이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노트북을 열고 스마트폰을 열면 펼쳐지는 너무나 재밌는 세계는 내가 코로나에 걸렸든 말든 여전히 그대로였다. 친구들과는 단체 메신저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통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몇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하지만 격리 기간 내가 가장 몰입했던 것은 따로 있었으니, 평소에도 꽤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했던 대중문화, 혹은 ‘K컬처’였다. 격리가 만들어준 시간에 나는 이전에는 관심만 있었지 딱히 소비할 생각이 없던 콘텐츠들, 혹은 관심은커녕 인지조차 못했던 콘텐츠들을 접하고 소비할 수 있었다. 보통 때에는 잘 몰랐던 아이돌 그룹이나, 목록에서 그냥 지나치던 웹툰과 웹소설 같은 것들.
나는 코로나 팬데믹이 K컬처 소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여러 증언을 그렇게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 각지의 격리, 혹은 봉쇄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전 지구적으로 펼쳐진 가장 특징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팬데믹은 대문을 걸어 잠그게 했지만 동시에 광대한 네트워크의 바다를 열어젖혔고, 비대면 문화와 온라인 세계에서의 삶은 팬데믹을 계기로 더욱 큰 폭으로 확대되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대중문화는 인류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처럼 이전에도 K컬처를 즐기던 사람들은 격리를 맞이하여 관심과 소비 영역을 넓혀나갔다. K컬처를 모르던 이들도, BTS 같은 K팝 그룹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들이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K컬처를 접하기 훨씬 쉬워졌다. 무료한 격리와 봉쇄 와중에 ‘이번에 유행이라는 그거나 좀 볼까’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침내 그 자연스러운 마음이 쌓이면서 임계점을 넘기면, 어느새 K컬처를 모르던 사람조차도 이제는 충성스러운 소비자로 변모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팬데믹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렇게 본다면, 팬데믹으로 초래된 혼란한 현실을 달래주고, 격리와 봉쇄를 견디게 해준 K컬처는 어찌 보면 팬데믹 기간 인류가 찾아낸 돌파구 중 하나였던 셈이다.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지구 전역으로 확산된 이 돌파구가, 위기가 끝나고 지구적인 교류가 복구되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까? 아마 누구도 그 모습을 다 예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구 반대편 칠레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거 기간에 K팝 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빈발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