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통계와 달리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비롯해 다른 기관의 통계 다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시계열(時系列)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20년, 30년 전 등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고 다른 나라 통계와 비교 분석하기도 어렵다. 이런 통계들을 연구해야하는 입장에 서면 ‘왜 내가 경제학자를 직업으로 선택했는가’, 소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예전에 ‘문화로 먹고 살기’라는 책을 쓸 때에도 같은 이유로 회의가 왔었다.
문화와 관련된 소비 지출을 살펴볼 수 있는 통계가 가계동향조사에 담겨 있다. 여기에 오락·문화 분야에 대한 지출 통계가 있고 세부 항목도 여기에서 잡힌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는 2.4명이고, 가계 지출은 월평균 324만원 정도 된다. 가구 평균으로 오락·문화에 지출하는 돈은 14만원이다. 가계 지출의 4.3%가 오락과 문화에 사용된다. 적다면 적은 돈인데, 교육에 들어가는 지출이 20만원 정도니까 아주 적은 것도 아니다.
가계가 쓰는 돈 중 가장 큰 것은 먹는 것이다. 집에서 밥 먹는 데에 38만원 정도 쓰고, 외식과 숙박에 32만원이 들어간다. 주거·수도·광열(전기·가스비 등)에 28만5000원, 교통에 29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통신비에 12만원, 옷과 신발에는 12만원 약간 안 되는 돈을 쓴다. 이 정도가 평균적인 우리나라 가구의 월별 지출 항목이다.
세부 항목을 보면, 최근에 중요해진 것이 월별 4만원 정도인 문화 서비스와 2만원 가까운 운동 및 오락 서비스다. 1만원 정도인 애완동물 관련 서비스와 7000원 약간 넘는 캠핑 및 운동 관련 용품도 지출이 늘어난 항목이다. 반면 10년 전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것이 디지털 카메라 등 사진 광학 장비 항목인데, 500원도 안 된다.
악기는 649 원, 기록적으로 낮다. 프랑스에서 중산층을 규정할 때 악기를 필수 항목으로 넣는데, 한국의 가계는 악기에 돈을 너무 안 쓴다. 영화를 비롯한 연극 등 각종 공연과 전시회, 즉 우리가 문화 산업이라고 부르는 분야 지출(문화 서비스)은 월 4만원 정도다. 가구 평균 수를 감안하면, 식구당 한 달에 영화 두 번 볼까 말까 한 돈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선진국이 될수록 의·식비에 대한 지출 비중은 줄고, 문화에 대한 지출이 늘어날 거라는 점이다. 19세기에 존 스튜어트 밀이 본, 발전한 경제의 미래다. 당연히 그럴 것이고, 그게 더 고부가가치 경제로 가는 원인이자 결과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경제로 이전하는 것은 토건 대신 문화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는다. 엥겔지수 같은 복잡한 얘기를 하지만, 결국 돈이 많아질수록 먹는 데 들어가는 비중은 줄고, 문화와 교양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 선진국이라는 것 아닌가? 그걸 개개인이 매월 지불하는 돈으로 확인하려면 결국 가계동향조사의 지출 세세 항목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먹고사니즘’과 ‘가성비’가 팬데믹 이후 소비 트렌드를 요약하는 말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 문화 지출이 제일 먼저 줄어든다. 그렇게 줄인 나머지 돈으로 그래도 뭔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걸 하려다 보니까 개인은 지출 대비 효용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최적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다.
문화 산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24시간 중 여가를 쪼개는 경쟁을 하고, 가계의 오락·문화 지출비 14만원을 나눠 가는 혈투 중인 것 아닌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정도 되면서 이런 문화에 대한 지출이 획기적으로 늘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런 구조적 변화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문화 선진국, 말은 멋지지만 개인 지출 면에서는 아직 좀 먼 것 같다. 코로나 이후, 개인의 문화 지출에 대한 변화가 생겨날까?
정부가 문화의 근간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공공성 너머, 개개인이 알아서 지출하는 문화·오락비가 그 나라 문화 경제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문화 활동에 개개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쓰는 게, 문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의 근간 아니겠나 싶다.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 여유라는, 경제정책이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영화 한 편, 연극 한 편, 책 한 권이 갖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