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은 X세대와 오렌지족이 거리를 활보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젊은 세대의 대중음악이 빛나던 때였다. 그 시절에 독특한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무표정의 신신애가 이른바 이판사판 춤을 추며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 인기를 얻은 것이다. 드라마 ‘희망’(1993년)에서 ‘뽕짝네’ 역을 맡았던 신신애는 극 중에서 트로트를 천 곡 넘게 통달했다고 허풍을 떤다. 그 허풍의 결실이 ‘세상은 요지경’으로 꽃을 피웠다.
신신애가 노래한 ‘세상은 요지경’에는 1930년대에 발표된 두 곡의 노랫말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1939년에 김정구가 불렀던 ‘세상은 요지경’의 노랫말과 유사하나, 김정구가 1938년에 노래한 ‘앵화폭풍’의 노랫말도 일부 변형되어 들어갔다. ‘앵화폭풍’의 2절 중 “영감 상투 비뚤어지고 마누라 신발은 도망을 쳤네”가, 신신애가 부른 노래에서는 “영감 상투 비뚤어지고 할멈 신발 도망갔네”로 변형되었다. 노랫말처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지만 여기저기 가짜가 판을 치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1930년대의 ‘세상은 요지경’이 새 옷을 입고 1990년대에 부활한 것은 세상이 여전히 요지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바로 장애인의 날이었다. 얼마 전 장애인들이 릴레이로 삭발을 하면서 장애인권리예산 및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20년 넘게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달라지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교통권 문제는 종종 그들의 생존권과도 연관된다. 2014년에 미국에서 1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그곳에서는 자연스러웠다. 그들이 버스에 타느라 시간이 더 걸려도 아무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덜 불편한 사람이 더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며 조금 천천히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2020년에 신신애는 전자음악 사운드가 돋보이는 ‘웃으며 살자’를 발표했다. 노래의 마지막은 “우리네 인생 빈손으로 와서 옷 한 벌 입고 가는 것을. 아름다운 들꽃처럼 마음을 비우자.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웃으며 살자.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웃으며 살자”며 진짜 웃음소리로 끝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영화 ‘원더(Wonder·2017)’에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해라”는 말이 나온다. 힘든 시간을 버텨왔고, 앞으로도 버텨야 할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면 좋겠다. 그 ‘우리’에는 당연히 장애인도 포함된다. 웃으며 살고 싶다. 혼자 웃는 웃음 말고 함께 웃는 웃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