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창가의 괴테, 1787년, 종이에 연필과 펜, 수채, 41.5×26.6㎝, 프랑크푸르트 괴테 박물관 소장.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글자 그대로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생각한 많은 것을 담은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그 여행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하듯 길어야 한 달 남짓 낯선 나라의 명소를 찾아다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무려 1년 반 동안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한 숙박 공유 플랫폼의 구호를 일찍이 실천한 셈이다.

실제로 괴테는 숙박도 친구 집을 공유하는 거로 해결했다. 체류 기간 대부분을 괴테는 당시 로마에서 수학하던 독일 출신 화가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1751~1829)이 동료 넷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 얹혀 지냈다. 둘은 나폴리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으니 티슈바인이야말로 이 시절의 괴테를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을 터였다.

티슈바인은 편안한 옷차림에 실내화를 발에 걸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무심히 바깥을 내다보는 괴테의 뒷모습을 유연하게 그려냈다. 누군가 이처럼 창밖을 골똘히 내다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긴다. 우리 눈에는 그저 그의 등과 맞은편 건물의 지붕이 보일 뿐인데, 괴테 눈앞에는 틀림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누군가가 지나가거나, 아니면 날씨라도 기막히게 좋을 것 같다. 티슈바인이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쩌면 괴테는 화가에게 창밖의 정황을 세세하게 말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우리가 보지 못한 창밖 풍경을 전해주는 대문호의 역작이다. 따지고 보면 책이란 사느라 바빠서 창밖 내다볼 겨를이 없는 우리를 위해 대신 세상을 오래도록 살펴본 작가들의 기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