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날짜를 쓸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년 연도를 쓰기 십상이다. 새해의 첫달을 맞이하면 과거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새로운 결심을 다지기도 하지만 사실 하루이틀 만에 새사람이 될 수는 없고, 작년의 여운도 생각보다 길다. 그래서 1월(재뉴어리·January)의 어원이 된 로마의 신 ‘야누스(Janus)’는 머리 하나에 얼굴이 둘. 하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향해 있다. 야누스는 모든 시작을 관장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는 문지방의 신이자, 이행과 과도기의 신이기도 하다. 지나온 길을 잊은 채 출발해서는 온전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는 뜻인가보다.
돼지머리와 빵, 포도주를 차린 식탁을 앞에 두고 성찬을 즐기는 야누스를 한 페이지에 가득 차게 그린 이 삽화는 12세기 말 프랑스 북서부 페캉에서 제작된 필사본 ‘페캉 시편(Fécamp Psalter)’의 달력 중 1월이다. 여성 후원자가 주문해 소유했던 것인데, 일부 학자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의 왕비로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녔던 여성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그 주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흔히 중세 기도서의 달력에는 해당 월에 해야 할 노동이 그려지는데, 1월은 노동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잘 차려 먹는 연회의 달이다. 따라서 두 얼굴의 야누스가 식사하는 모습이 1월 달력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에겐 아직 설날이 한 번 더 남았다. 열심히 먹으며 지난해를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