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에 개관한 뉴욕의 ‘칼라일’ 호텔은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이름을 따왔다. 90년이 넘도록 세계 각국 대통령과 수상, 왕족을 맞이했으며, 재클린 케네디와 오드리 헵번이 우연히 만나 서로를 소개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호텔 내부에 유명한 장소가 한 군데 있다. 일층에 위치한 ‘베멀먼스 바(Bemelmans Bar)’. 1947년 문을 열어 76년 역사를 지닌다. 아르데코 스타일 인테리어, 금박 천장 아래 새빨간 페라리색 재킷을 입은 바텐더가 능숙하게 칵테일을 만든다. 뉴욕을 대표하는 올드 패션 풍경이다. 재즈 피아노, 보컬을 포함한 이 바의 음악 연주 또한 정평이 나있어, 과거 듀크 엘링턴이나 조지 거슈윈 등도 여기서 공연을 했다. 케네디와 트루먼 대통령, 리즈 테일러, 폴 매카트니 등 수많은 명사의 단골 술집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무엇보다 유명한 건 바 전체를 장식하는 ‘센트럴 파크’라는 제목의 벽화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된 ‘매들린(Madeline)’ 시리즈의 동화 일러스트레이터 루드비히 베멀먼스(Ludwig Bemelmans)의 작품이다. 본인의 책 중 주인공 매들린이 친구 11명과 센트럴 파크에서 사계절 노는 걸 그렸다. 연못과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나 웨이터 원숭이, 신사복을 입은 토끼, 스케이트 타는 코끼리 등의 모습이 특유의 표현주의 기법으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 로맨틱한 벽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의 이미지를 구상할 때 큰 영감을 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이 벽화의 유명세로 간혹 손님들이 벽화의 일부를 훔쳐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도구로 어떻게 뜯어 가는지 의문이지만 호텔 측은 훼손된 벽화를 위한 기능공을 고용, 정기적으로 복원을 한다. 벽화의 내용과 정서를 기념하기 위해서 호텔은 낮 시간에 어린이를 초청, ‘동화 읽기’와 같은 행사도 연다. 미술관의 어떤 그림 못지않은 힘과 이야기를 간직한 이 벽화는 오늘도 바를 방문한 손님과 친근하게 교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