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 성능경(成能慶·1944~)은 1974년 6월 21일 개막한 그룹 전시, ‘제3회 ST전(展)’을 위해 전시장 벽면에 흰 패널 네 개를 붙여 뒀다. 그 위에는 6월 1일자부터 일주일 치 신문을 매일 교체해 게시한 뒤 기사만 면도날로 오려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벽 앞에는 아크릴 통 두 개를 뒀는데, 청색 통에는 오려낸 기사를, 투명한 통에는 광고와 사진, 만화 등을 포함한 나머지 지면을 분리해 담았다.
신문을 읽고, 읽은 부분을 오려내고, 누더기가 된 나머지를 분리하는 작업은 단순한 일상적 행위의 반복일 수 있지만, 기사는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읽고 자르는 내용과 신문지의 모양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각성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지만, 어떤 평론가들은 이를 당대 유신 정권의 언론 검열에 대한 저항 행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물론 작가가 신문을 퍼포먼스 도구로 선택했을 때, 서슬 퍼런 유신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몰랐던 게 아니다. 그러나 그는 미술이 직설적인 플래카드가 아니며, 정치 선전에 매몰된 예술 안에서는 개인이 사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다며 늘 주의해 왔다.
그렇게 지난 수십년 동안 소외됐던 작가는 여든을 넘긴 요즘이 전성기다. 누더기가 된 그의 신문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전시됐고, 작년에는 서울에서 외국인 100명과 함께 서로 다른 언어의 신문을 읽고 오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언론의 자유를 넘어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지금, 종이 신문을 읽는 일은 40년 전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신문 읽기는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