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란 글자 그대로 ‘표를 던진다’는 뜻이고, ‘표’는 증거가 될 만한 종이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투표’를 ‘선거’와 동일시하지만, 사실 선거에 종이를 쓴 건 근대 이후 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기 파편을 썼고,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구슬을 썼다. 미국에는 지지하는 후보 이름을 부르거나 그 앞에 줄을 서는 식의 허술한 방법도 있었다.
미국 화가 조지 케일럽 빙엄(George Caleb Bingham·1811~1879)의 ‘지방선거’는 오늘날과 사뭇 다른 당시의 선거 현장을 낱낱이 보여준다. ‘국민의 뜻이 곧 최고법’이라고 쓴 파란 깃발을 세워둔 투표소 앞이 문전성시다. 유권자들은 하나씩 계단을 올라 중복 투표가 아니라는 선서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검은 톱해트를 들어 올리며 웃는 낯으로 용지를 내미는 이가 있다. 당시에는 각 정당에서 용지를 따로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배부한 것. 그렇게 지지하는 정당 표를 제출하다 보니 비밀선거도 아니고, 금권 선거와 부정투표 시비가 잦았다. 아니나 다를까 투표장 앞에서는 신문을 읽거나 진지하게 토론하는 이들 가운데 버젓이 술판이 벌어졌고, 이미 만취해 인사불성인 사람을 억지로 세워 안고 줄을 선 이도 보인다. 제정신이 아니어도 정당 표만 내면 되니 벌어진 일이다.
화가 빙엄은 ‘지방선거’를 비롯해 투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림들을 발표했다. 사실 그는 미주리주 하원 의원으로 출마해 세 표 차로 당선됐으나 상대 요구로 재검표를 했다 낙선한 경험이 있다. 그는 2년 뒤 다시 출마해 넉넉한 표 차로 승리를 거둬 화가로서 드물게 선출직 정치인으로 활약했으니, 가벼운 용지 한 장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실감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