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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창 찌개

3년을 기다렸다. 처음은 제철을 모르고 갔다가 찬 바람이 나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일 년을 기다렸다. 일 년 후, 찬 바람이 날 때 다시 갔지만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서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일 년 후, 드디어 누런창을 만났다. 울릉도에 며칠 머무는 덕에, 슬로푸드 회원들을 만난 덕에 귀한 누런창 찌개와 누런창 쌈장을 맛볼 수 있었다. 일부 식당에 누런창 쌈밥이라는 메뉴가 있지만 재료가 준비되지 않으면 구경할 수 없다. 울릉도 주변에서 오징어가 잡혀야 비로소 가정이든 식당이든 누런창을 준비할 수 있다.

누런창 쌈장

누런창은 오징어 내장 중에서 간을 말한다. 간은 내장 중에 차지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 오징어가 20센티미터라면 간은 10센티미터라고 한다. 그러니 식량이 귀한 시절 허투루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추석이 지나고 찬 바람이 나면 누런창을 한 독 채우고 소금을 올려 한 달 정도 숙성시킨다. 누런창은 단백질 덩어리다. 고기가 귀한 울릉도에서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이었다. 누런창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울릉도 주변에서 당일 잡은 오징어만 갈무리할 수 있다. 식량이 귀했던 시절에 옥수수와 홍감자에 누런창 찌개는 섬 주민을 지켜주던 음식이었다. 육지와 뱃길도 쉽지 않았고, 고기는 비싸기까지 했으니 섬 안에서 만들어 먹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당일바리 오징어를 해체하고 갈무리한 누런창

오징어는 머리, 몸통, 다리 부분은 건조해 판매하고, 내장은 흰 부분과 누런 부분으로 나누어 보관했다. 울릉도에서 쉽게 만나는 오징어내장탕이 흰 부분인 생식소를 이용한 음식이다. 노란색 간은 염장했다가 된장, 마늘, 매운 고추를 넣고 볶았다. 이것이 누런창 쌈장이다. 그대로 밥상에 올리기도 하지만, 여기에 시래기를 넣고 자작하게 끓이면 누런창 찌개가 된다. 오징어가 귀해지면서 누런창 찌개가 울릉도 밥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울릉도는 누런창을 슬로푸드국제연맹이 추진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종과 음식을 보존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할 계획이다.

누런창 천일염에 한 달간 발효시킨 누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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