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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과 드라그셋, 프라다 말파, 2005년, 복합재료, 4.6x7.6m, 미국 텍사스주 말파 근교 소재, 롭 잰드 사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고 했다. 그 악마가 악몽을 꾸면 이런 장면일 것이다. 인적 없이 메마른 허허벌판이 끝도 없이 펼쳐진 가운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 매장이 서 있다. 시골 도로변의 간이 버스 정류장처럼 초라한 건물에 위풍당당하게 내걸린 로고가 생뚱맞다. 그 안에는 진품 하이힐과 핸드백이 진열되어 있다. 농담치고는 진지한 이 작품은 1995년부터 함께 작업해 온 북유럽 출신 듀오 아티스트,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1961~ )과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1969~ )의 대표작이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이 작품을 두고 ‘팝아트의 건축 버전이자 대지 예술’이라고 불렀다. 널리 알려진 상품 브랜드를 차용했으니 ‘팝아트’에 해당하고, 작가들은 건물을 의도적으로 방치해서 마치 자연물이 시간이 흐르면 풍화되어 사라지듯,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이 ‘작품’을 내버려두기로 했으니 ‘대지 예술’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초현실주의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개체가 맞붙어 낯선 광경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가 바로 인구 2000명이 채 안 되는 말파다. 미국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가 미술 재단을 세우고 대형 작품들을 야외에 전시해 ‘현대 미술의 성지’가 되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별게 없는 사막이라 웬만한 열정이 아니고는 외부인이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여기에 핸드백 하나에 수백만 원 하는 프라다 매장이 생기는 건 온 천지의 악마가 다 내려와도 어려울 것이다. 세계인이 아는 브랜드지만, 되는 곳이 있고 안 되는 곳이 있는 세상. 그게 바로 작가들이 간명하게 보여주는 소비 사회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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