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0월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얼마나 높일지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먼저 때렸다. 지난달 25일 트럼프는 취임하면 즉시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전체 상품에 관세 25%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연간 20만명에 이르는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박이었다. 첫 번째 임기 때와 같은 패턴이다.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이웃 국가들을 본보기로 다른 국가들이 알아서 납작 엎드리도록 하는 전략이다.
다급해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바로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국경 문제 담당 장관을 대동하고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트럼프와 회담했다. 이렇게 화급하게 캐나다가 대응에 나선 것은 총수출의 75%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을 만큼 캐나다 경제가 미국에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캐나다 전체 수출 1위 품목인 원유는 수출량 대부분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원유에 대해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캐나다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둘째로 큰 나라인 캐나다는 에너지 부국이다. 캐나다는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석유 매장량(1710억 배럴)이 세계 3위다. 2023년 말 기준으로 하루 453만배럴을 생산해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4위 석유 생산국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1년 앞선 1858년 온타리오주에서 석유 채굴을 시작했다. 현재 캐나다 석유 대부분은 앨버타주와 서스캐처원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캐나다 퇴적 분지에서 생산한다. 140만㎢에 이르는 광대한 이 지역은 캐나다 주요 항구 및 산업 지역과 떨어져 있다.
캐나다 원유는 독특하다. 액체 상태가 아닌 모래와 석유가 섞여 치약처럼 끈적한 오일샌드가 전체 매장량의 97%를 차지한다. 모래와 석유를 분리하려면 대량 증기로 가열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한 원유는 ‘서부 캐나다산 셀렉트(WCS)’라 한다. 캐나다 원유의 81%는 수출되는데 그 97%는 미국으로 간다.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캐나다산 비율은 2013년 33%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 2023년에는 60%에 달했다.
하루 1320만배럴을 생산하고 이 가운데 410만배럴을 수출하는 미국이 왜 캐나다산 원유를 수입할까? 가장 큰 이유는 캐나다산 원유가 미국산보다 저렴하다는 점이다. 11월말 기준으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에 비해 WCS는 배럴당 10달러 정도 저렴하다. WTI에 비해 밀도와 유황 함량이 높아 저품질 원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미국의 셰일오일이 있다. 셰일오일은 가벼운 경질유여서 휘발유 생산에는 유리하지만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경유 생산에는 불리하다. 가벼운 셰일오일에 묵직한 캐나다산 원유를 섞으면 다량의 경유를 생산할 수 있다. 휘발유보다 경유가 비싼 미국에서 저렴한 원유로 다량의 경유를 생산하면 높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캐나다 원유는 미국 정유 업계의 높은 이익을 보장해 주었다.
캐나다 원유는 가격이 낮을 뿐 아니라 가격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미국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까 그렇다. 캐나다의 송유관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캐나다 항구로 향하는 송유관은 오랫동안 하루 수송 능력 30만배럴의 트랜스마운틴 송유관이 유일했다. 항구에서 유조선에 실린 원유 대부분도 미국 서해안 지역으로 수출됐다. 유럽으로 향하는 소량의 캐나다산 원유는 미국 남부 지역까지 이어진 송유관을 통해 수출된 것이었다. 2024년 트랜스 마운틴 송유관 확장(TMX)이 마무리되면서 항만으로 향하는 송유관 운송 능력이 89만배럴로 확장됐지만 여전히 미국 시장 의존도는 압도적이다.
미국은 캐나다산 원유에 대해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부터 현재의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까지 계속 무관세를 적용했다. 미국 국민들은 무관세로 도입되는 캐나다산 원유를 통해 낮은 석유 가격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캐나다는 낮은 가격을 수용하는 대신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인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자유무역협정은 이렇게 모두에게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산 원유에 관세 25%가 적용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캐나다의 원유 수출은 줄어들고 캐나다의 관련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는 캐나다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 수출 역시 송유관 용량 제한으로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은 관세가 부과되면 캐나다산 원유를 대규모로 수입하던 중서부 지역의 소비자 가격이 약 10%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관세를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결국 미국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캐나다산 원유가 저렴한 가격으로 아시아로 향하면서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트럼프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와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을 늘릴 계획이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해서 캐나다 원유 도입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캐나다의 한정된 해상 수출 인프라 역시 수출량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안정적인 미국 시장에 안주하던 캐나다로서는 진퇴양난에서 결국 미국 요구를 최대한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그만큼 취약성을 키운다는 것을 캐나다는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가 만들어내는 고차방정식을 우리는 어떻게 풀 것인가 궁금해진다.
값은 싸지만 온난화 부추기는 캐나다산 원유… 오일샌드서 뽑아낼 때 온실가스 年 8000만t 발생
캐나다에서 모래, 점토, 물과 역청이 혼합된 오일샌드는 중서부 앨버타주에 집중돼 있다. 오일샌드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방법은 크게 노천 채굴과 원위치 생산(In-Situ) 방식으로 구분된다.
노천 채굴은 거대한 굴착기로 오일샌드를 떠낸 다음 온수와 화학 첨가제를 혼합해 슬러리 형태로 만들어 비중에 따라 역청, 모래, 물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생산 방식은 간단하지만 광대한 면적의 산림과 지형을 훼손하는 단점이 있다.
원위치 생산 방식은 지하 200~600m에 있는 오일샌드층에 시추공을 뚫은 다음 고온 고압 증기를 지속적으로 주입해 역청의 점도를 낮춰 물과 함께 지상으로 끌어올려 석유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생산 효율이 좋고 자연 파괴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물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단점이 있다.
과거 오일샌드는 생산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최근에는 배럴당 약 30달러(약 4만2000원) 정도로 낮아졌다. 오일샌드 생산은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하지만 일단 생산을 시작하면 생산량의 큰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오앨샌드에서 원유를 추출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온실가스를 포함한 오염 물질을 다량 만들어낸다. 오일샌드 생산 과정에서 매년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12%인 8000만톤에 이른다. 캐나다 정부는 탄소 포집 및 저장(CCS)을 통해 오일샌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문제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캐나다로서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인 오일샌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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