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시내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의 북쪽 외곽 동네 나리마스. 지난 3일 아침 나리마스역 인근에 있는 중증 환자 돌봄 시설 ‘이신칸(醫心館)’에 방문 치과 진료팀이 찾아왔다. 치과 의사와 치과위생사, 방문 진료팀 차량 운전기사 등 3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정기 방문이다.
이신칸에는 뇌졸중 후유증 환자, 대퇴골 골절로 거동 못 하는 고령 환자, 말기암 환자,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 환자를 포함한 40여 명이 입소해 있다. 이들은 거동이 어려워 치아와 구강 질환 치료를 방문 진료팀에 의존한다.
◇일본, 방문 치과 진료 활성화
방문 치과 진료팀은 파킨슨병을 앓는 83세 할머니 병실을 찾았다. 치과 의사가 구강 상태를 검진하고, 구내염을 치료하고, 치과위생사는 혀에 낀 백태를 제거하고, 치간 칫솔로 치아 사이사이에 낀 오염물을 제거했다. 15분 정도 걸리는 진료 작업이었다. 이날 오전 방문 치과 진료팀은 여러 병실을 돌면서 입소 환자 9명을 진료했다. 치주염을 치료하고, 구강과 치아 청소 작업을 하고, 때로는 틀니 제작 틀을 뜨고, 말하거나 삼키는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도 측정했다.
방문 치과 진료팀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의 집도 찾는다. 다리뼈 골절로 거동을 못 하고 침대에서 지내는 85세 여성 환자는 치아 없이 전체 틀니로만 살아가고 있었다. 틀니는 입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때로는 돌출된 틀니 부분이 입천장을 눌러서 궤양을 일으킨다. 환자는 이로 인해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방문 진료팀은 ‘윙~’ 소리 나는 치과용 전동기로 틀니 돌출 부위를 갈아서 입천장을 누르지 않게 조작했다. 틀니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고쳤다.
방문 치과 진료팀은 고령으로 거동을 못 하는 92세 여성 환자 집도 찾았다. 환자는 삼킴 기능이 떨어져 물을 마시면 물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와 폐 쪽으로 흘러 들어가 사레들린 듯 기침을 토해 냈다. 음식과 물이 폐로 들어가 흡입성 폐렴이 생길 처지였다.
이에 치과 진료팀은 간이 내시경 장비를 꺼내어 환자의 인두와 후두 기능을 살폈다. 환자에게 걸쭉한 점도의 음료를 삼키게 한 후 이 음료가 식도가 아닌 기도로 넘어가는지 휴대용 아이패드로 연결된 내시경 화면을 보면서 확인했다. 방문 진료팀 와카스기 요코(유쇼카이 의료법인 재택의료부 치과부장) 치과 의사는 “내시경 검사를 통해 환자의 삼킴 능력 수준에 맞는 물의 점도를 찾아 보급한다”며 “그래야 사레들어서 생기는 흡입성 폐렴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일반 의사의 방문 진료는 물론 방문 치과 진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현재는 전국 치과 의원 6만6843곳 중 약 21%인 1만4000여 곳이 방문 치과 진료를 실시한다. 한 의원에서 월평균 70여 건의 방문 진료가 이뤄진다. 이를 토대로 한 해 방문 치과 진료 건수가 1100만건인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는데도 방문 치과 진료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없다. 치과 질환이 있거나 구강 기능에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든 치과를 찾아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탓에 요양병원 1400여 곳 입원 환자 60만여 명, 요양원 입소자 30만여 명, 거동이 불편해 재가 요양 서비스를 받는 150만여 명, 장기 입원 중환자, 거동 불편 장애인 등 약 300만 명의 치아 질환, 의치 부실, 치주염 등이 방치되고 있다. 치주염은 전신으로 퍼져 심장염증과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폐렴은 전체 사망 원인 3위까지 올라왔다. 고령자 폐렴은 주로 먹다가 음식물이나 물이 폐로 들어가 생기는 흡입성 폐렴이다.
정영수(연세대 치대 학장) 대한치과병원협회 회장은 “거동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구강 관리를 정기적으로 해서 조금이라도 오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도 방문 치과 진료 시스템과 삼킴·저작 등 구강 기능을 평가하는 구강 검진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노쇠 잡아내는 구강 기능 검진
일본은 치아 질환뿐만 아니라 삼킴과 발음, 혀의 움직임 등이 쇠약해지는 ‘구강 노쇠’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구강 기능 저하증이라는 질환을 정립하고, 구강 건강이 전신 건강의 게이트라는 뜻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구강 기능 검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강 기능 검진을 정립하고 주도적으로 이끄는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 히라노 히로히코 치과·구강외과 부장은 “잘 씹고, 잘 삼키고, 잘 말하는 구강 건강이 좋아야 전신 건강이 좋다”며 “구강 노쇠 예방이 노년기 신체 허약과 우울증, 사회적 고립을 막는 첫 관문”이라고 말했다.
구강 기능 검진은 동네 치과 의원에서도 10~15분 정도면 할 수 있도록 간이화했고, 이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 검진 항목은 7가지로, 이 중 3가지 이상이 비정상이면 구강 기능 저하증으로 진단된다. 검사 항목은 혀 백태량을 측정하는 구강 위생 평가, 구강 건조를 평가하는 혀 습윤도 측정, 위아래 어금니로 악무는 힘 측정, 카·파·타 단어를 각각 5초간 빨리 말하는 수 측정, 혀가 입천장을 누르는 힘 측정, 음식을 잘 씹어 먹는 저작력 측정 등이다. 삼킴 기능 평가는 일상생활에서 물과 음식을 잘 삼키는지 설문 조사로 평가한다.
히라노 치과부장은 “구강 기능에 문제가 있는 고령자를 조기에 발견해 개선하는 재활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며 “초고령사회에서는 구강 검진과 방문 진료 같은 선제적 치료 관리 체계가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하고, 전체 의료비를 절감하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