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20세기 초 인류를 설사병에서 구원한 피에르 부카르 박사다. 유산균을 챙겨 드신다면 그 성분표에서 ‘락토바실러스 아시도필러스’를 찾아보시라. 1907년 부카르 박사가 인분(人糞)에서 ‘락토바실러스 아시도필러스’를 분리해,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정장제 ‘락테올’을 만들었다.
그런데 현미경을 손에 쥔 실험실의 부카르는 설사병 퇴치 중인 세균학자가 아니라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하는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처럼 매력적이다. 흰 실험복이 트렌치코트보다 멋스럽고, 손에 쥔 시험관이 마치 와인잔처럼 보이는 건 순전히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1898~1980)의 놀라운 능력 덕분이다.
폴란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렘피카는 변호사와 결혼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주하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유럽에 정착한 뒤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체주의를 익혀 대범하게 형태를 단순화하고 공간을 왜곡하면서도 고전주의적인 회화의 세밀한 묘사와 매끄러운 표면 효과를 결합해 인물의 특성을 잘 살려낸 장식적인 초상화를 그려냈다. 상류층의 화려한 삶에 익숙했던 그녀는 두 번의 세계대전 혼란 속에서도 부유층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들과 자유로운 연애를 병행했다.
말년을 멕시코에서 보낸 렘피카의 유골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멕시코의 활화산 포포카테페틀에 뿌려졌다. 최근 경매에 나온 ‘부카르 박사의 초상’은 우리 돈 125억원에 팔렸다. 이제 부카르 박사는 락테올보다 렘피카가 그린 초상화의 남자로 더 유명하다. 그녀의 영혼은 지금도 활화산처럼 쉬지 않고 타올라 뜨겁게 분출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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