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을 거둬
올려두는 마음에
복스러운 미소
花(はな)びらを置(お)くここちして福笑(ふくわら)ひ
봄이 봄 같지 않고 뒤숭숭해서 꽃을 보아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지천으로 개나리도 피었고, 목련도 피었는데, 웃음이 안 난다. 전국에 산불이 일고, 도심에 싱크홀이 생기고, 가게에서 손님이 끊기고, 민심은 어느 때보다 둘로 쪼개져 정국은 난파선이 되어 가고. 안 그래도 한반도는 반쪽인데 그게 또 반으로 갈라지니 네 쪽으로 폐망한 조선 왕조의 붕당 정치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지난 세기 세계 전쟁은 경제 불황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합심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라고 외쳐 보지만, 어차피 자기 편이 지는 건 죽기보다 싫겠지. 그래도 꽃은 피고, 아이들은 태어나고, 나는 하이쿠를 뒤적인다. 슬프지만, 슬프니까, 아름다운 것을 보자. 그래야 인간은 살아갈 힘을 얻으니. 작고 여린 것을 밟아 뭉개지 말고, 고이 거두어 담자. 그 귀엽고 예쁜 것을 보며, 그때만큼은 미소를 짓자. 봄날 꽃잎을 꼭 닮은, 복스러운 미소를.
하이쿠 시인 오오키 아마리(大木あまり·1941~)는 놀이를 보며 이 시를 썼다. ‘복스러운 미소’라는 뜻을 가진 ‘후쿠와라이’라는 놀이다. 볼이 볼록하고 하얀 얼굴에 가는 눈을 새우처럼 구부리며 환하게 웃는 여자 인형을 ‘오타후쿠(お多福)’라고 하는데, 이 인형 얼굴 윤곽만 있는 종이를 앞에 두고 눈을 가린 채 눈, 코, 입을 더듬더듬 가져다 붙인다. 놀이하는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서 위, 위, 아래, 아래,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합심해서 얼굴을 완성한다. 안대를 풀고 보면 눈, 코, 입 위치가 삐뚤삐뚤해서 그 엉뚱한 얼굴에 다 같이 깔깔깔 웃는다. 시인은 눈, 코, 입 모양으로 잘라놓은 종이를 꽃잎이라고 했다. 꽃잎을 한 장 한 장 거둬 올려 복스럽게 웃는 얼굴을 완성하는 것이다.
일본도 요즘 마냥 웃기만은 어려운 시절이다. 코로나 때 대량으로 쌀이 남아 쌀값 폭락을 막으려고 정부가 쌀 생산량을 억제했는데, 작년 무더위로 쌀 품질이 낮아지는 바람에 쌀 부족 현상이 일어 현재 쌀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다. 2000엔 주고 사던 쌀을 4000엔, 5000엔 주고 사야 하는 거다. 서민들은 하루에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나 한 끼로 줄여야 할 판이라며 울상이다. 전국에서 데모까지 일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언제나 가장 두려움에 떠는 건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우리 얼굴은 삐뚤어진다. 부디 여린 꽃잎들을 고이고이 거두어가며, 우리 모두 슬기롭게 이 위기를 헤쳐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