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황의 죽음이 선고되자마자 추기경들은 다급히 움직인다. 교황이 선종하는 순간 옆에 있던 네 명의 추기경은 교황이 총애하는 사도에서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캐릭터대로, 각자의 셈법대로, 각자의 일을 한다. 교황의 죽음을 선고하는 자, 교황의 체스판을 챙기는 자, 교황은 원래 힘든 자리라고 말하는 자, 차기 교황 선출 임무를 맡게 되는 자, 모두 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차기 교황이라고 믿고 있다. 영화 ‘콘클라베’ 이야기다.
이 강렬한 도입부를 보고 영화가 종교 스릴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스릴러임을 강조하는 예고편을 볼 때만 해도 교황을 선출하는 영화가 어떻게 스릴러가 될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말이다. 절반을 넘을 때까지 연달아 투표하는 게 병렬적으로 이어질 텐데 스릴을 유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교황 선거는 의외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보수주의자, 세속주의자, 회의주의자에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다크호스까지 가세해 계속 판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는 종교 스릴러라기보다는 정치 스릴러였다. 참고로 나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드라마는 무척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는 재미가 없고 정치 드라마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고단수의 말로 하는 싸움이 정치인데 현실 정치에서는 그런 싸움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재미와 스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치 드라마에서는 말다운 말들이 격돌하는데, 말을 잘한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나비 효과나 보이지 않는 손, 이해하기 어려운 고차 함수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기에 의외의 묘미가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있고! 정치 드라마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콘클라베’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가톨릭 추기경의 복식미를 극대화한 종교 코스튬 영화이기도 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빨간색 수단을 입고 빨간색 주케토(원형 모자)를 쓴 추기경들이 나오는 예고편이 강렬해서 그랬다. 스크린 속에서 불타오르는 빨간색을 보며 생각했던 것이다. 빨간색이라고 다 같은 빨간색이 아니다! 피와 희생의 상징인 저 빨간색이 ‘추기경 빨강’이라는 뜻의 카디널 레드(cardinal red)를 이름으로 갖게 된 건 필연적이라고도. 카디널 레드가 된 빨간색이 먼저인지, 카디널 레드라는 이름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원히 색이 바래지 않을 것만 같은 빨간색이 거기 있었다. 빨간색의 마력에 홀려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제는 검은색, 주교는 보라색, 추기경은 빨간색, 교황은 흰색으로 상징되는 가톨릭 세계를 주무대로 삼은 데다가 정치적 색채까지 띠고 있는 영화라서 색이 더 잘 보였다. 색의 관점에서 보자면, 흰색을 얻기 위한 빨간색들의 투쟁으로 느껴졌다. 로만 퍼플(roman purple)이라고 하는 형광빛이 도는 보라색 수단을 입은 주교와 검은색을 입은 사제와 수녀는 추기경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빨간색의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보였다. 라틴어로 소통하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추기경은 발목까지 오는 빨간 망토를 어깨 너머로 두르고 화려하게 등장하는데 실제로 있는 복식이었다. 명칭은 페라이올로.
영화는 빨간색들의 믿음이 배반당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차기 교황이 된다고 믿었던 이들의 믿음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믿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표를 얻지 못하며 무너진다. 과반수 이상, 정확히 말하면 3분의 2가 찬성해야 교황으로 선출되는데 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며 기세가 꺾인다. 투표는 과반수 이상의 표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문이 잠긴 성당 안에 갇힌 채로. ‘콘클라베’가 바로 이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끝까지 누가 교황이 될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이 영화의 스릴이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오점 없는 사람은 없으며, 가장 훌륭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 아니기에 누구든 교황이 될 수 있다. 돈으로 표를 산 자든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하는 자든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교황이 선출되며 영화는 끝나는데 나는 이긴 자보다 패한 자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랬다.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모두 그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하나같이 모두 자신이 한 행동이나 자신이 뱉은 말로써 무너졌다. ‘적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라고 하면 너무 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