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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질렀다고.” 간스케는 화재 현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다로는 무심코 간스케를 바라보았다. “또라니?” “올해 들어서 벌써 세 번째야.” “하야부사 지구에서 세 군데나 불이 났다고?” 간스케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불씨가 없는 데서 불이 났지. 이상하지 않아, 다로? 단정 짓는 건 아직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우연이 아닐 거야.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이건 아마, 연속 방화겠지.”

- 이케이도 준 ‘하야부사 소방단’ 중에서

지난 2023년 출간된 이케이도 준의 '하야부사 소방단' 책 표지.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뒤흔드는 연속 방화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소설이다.

거센 불길이 일렁인다. 작은 불씨 하나가 나무를 태우고 집을 허물고 마을을 집어삼킨다. 산에 살던 수많은 생명이 비명을 지른다.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숲은 검은 숯이 되고, 역사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생활의 터전을 잃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 31건이 열흘 넘게 번졌다. 사망자만 30명, 여의도 면적의 156배에 해당하는 땅이 잿더미가 되었다.

화재 진압을 마친 소방대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허기를 달래는 것은 미역국에 말아 낸 밥 한 숟가락, 김치와 콩자반 한 종지. 그들은 다시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호스 노즐을 잡는다. 뺨이 그을리고, 연기로 목이 메어도 멈추지 않는다. 불길이 잡히면 안도의 한숨도 잠시, 곧바로 다음 현장으로 향한다.

슬럼프에 빠진 추리소설가 다로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왔다. 평온한 전원에서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었지만, 뜻밖에도 연쇄 방화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자치 소방단에 자원한 다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화재를 진압하고 사건을 조사한다. 누군가는 보험금을 받으려고, 어떤 이는 태양광 사업을 위해, 또 누군가는 땅을 차지하려고 불을 지르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화재는 자연발화보다는 인간의 실수나 악의, 비뚤어진 욕망과 어긋난 믿음에서 비롯된다. 너무나 쉽게 불길에 휩싸여 고통 받는 우리는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인가. 그러나 서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도, 메아리가 떠난 산을 푸르게 살려내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절망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은 만물을 회복시킨다. 절대로 불행에 지지 않고 마음 모아 다 같이 희망을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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