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K발라드’가 위기라는 기사가 줄을 이은 적이 있다. K팝 아이돌이 대세인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팬 충성도가 약한 발라드 가수들이 차트에 오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2023년 6월에 써클 차트 톱 20 가운데 발라드는 허각의 ‘물론’,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 임재현 ‘헤븐’ 세 곡이었다.
아이돌에게 밀려 발라드가 후퇴한 선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 일명 ‘소몰이’라고 하던 강하게 우는 발라드가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아이돌 인기에 밀려 빠른 속도로 사라진 적 있다. 바이브, 에스지워너비 등 숱한 보컬 그룹이 2선으로 밀려났다.
발라드는 기본적으로 슬픈 곡이 대세인 만큼 상큼한 매력의 아이돌들이 가요계 분위기를 바꾸자 우울한 분위기의 발라드가 빠르게 밀려났다.
그런데 얼마 전에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됐다. 위와 같은 분석이 유효한 지난 20년간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 장르는 발라드로 나타났다. 음원 사이트 멜론 발표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지난 20년 동안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한 곡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수록한 곡은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었다. 2위는 아이유의 ‘밤편지’, 4위엔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5위엔 폴 킴의 ‘너를 만나’가 올랐다. 모두 발라드다. 지난 20년 동안 아이돌 댄스 팝이 대세였음을 감안할 때 의외의 결과다.
아마도 발라드가 스테디셀러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1위에 오른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은 2018년 멜론 연간 3위에 오른 데에 이어 이듬해 멜론 연간 5위에 올랐다. 7위를 기록한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은 2014년 곡이지만 역주행 후 아직도 100위 안에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그랬듯, 오래 사랑받는 곡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발라드는 정해진 틀이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시대를 앞서가진 않지만 유행을 크게 타지도 않기 때문에 시대적 분위기를 비교적 덜 탄다. 감각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어야 하는 장르 특성이 오히려 ‘국민 가요’ 경쟁에는 유리하다. 흐름을 주도하는 데에는 시류에 민감한 댄스 팝이 유리하지만 조용히 감성을 어루만지는 기능에서는 발라드가 유리한 점이 있다. 위기설이 잦았던 발라드가 오히려 높은 순위를 기록한 이유 아닐까.
지금도 멜론 차트를 보면 아이돌 댄스 팝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 가운데에 조째즈의 ‘모르시나요’가 최상위권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발라드는 끝내 살아남고 있다. 멜론의 20년 통계가 말해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64uidOIH2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