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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여름 방콕에서 새 소설을 위한 취재와 집필에 몰두했다. 한 달 남짓한 일정을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짐을 채 풀기 전에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방콕에 도착했을 즈음 아버지는 이미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아마도 해외에서 동동거릴 아들이 걱정되어 함구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나들며 평생 바다에서 땀 흘린 구릿빛 마도로스. 그런 아버지가 어느덧 노(老)선장이 되었다. 아들은 그 순간조차도 아직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 아버지는 분명 이겨내실 거라는 맹목적 믿음에 슬쩍 기댈 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서울로 원정 가 치료받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서울 길이 익숙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몇 차례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부산에서 새벽 다섯 시 전에 고속 열차에 올라탄 뒤에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면 오전 외래 시간에 대학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격 검진과 항암 치료가 시작되자 당일에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가 어려워 숙소도 필요했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부산 사람이라 더 고단한 과정이었다.

간호과에는 하루라도 앞당겨 진료를 예약하려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하지 않은 환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기를 까마득히 기다렸다.

몇 차례 동행 끝에 아버지는 홀로 서울 원정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시간을 더 뺏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는 그날의 첫 기차를 타려고 새벽 두 시에 여정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는 부산 송도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일러스트=Midjourney·조선디자인랩

소박하게 바다가 펼쳐진 송도 해변을 지나 충무대로를 따라서 이십여 분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짠내가 밴 공동 어시장과 자갈치시장이 나온다. 이어서 영도다리와 옛 시청 자리에 들어선 중앙동의 한 백화점을 지나면 중앙대로에 접어든다. 한낮의 활기가 사라진 어두컴컴한 빌딩 숲을 지나면 마침내 부산역이었다. 아버지는 왜 택시를 타지 않고 어두운 상점 거리를 걸어갔을까. 그날은 한파 특보가 내린 늦겨울이었다.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제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바다는 한결같고 우리의 삶도 계속될 것이다. 진부한 이 사실들이 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그 새벽 여정을 되짚어 본다. 눈을 감으면 어둡고 추운 길을 걷는 노인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막막해져 온다. 하지만 곧 그가 노인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 노(老)선장이라는 사실을 안다. 다시 보면 힘주어 걷는 걸음마다 생의 의지가 느껴진다. 아버지는 그 새벽의 여파로 이틀을 앓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바다로 나가 배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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