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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 1942. 봄 (추정)

아름다운 봄꽃과 고운 향기가 봄 소식을 전하기 전에 거친 불길이 경상북도 일대의 초목을 휩쓸어 갔다.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화마에 잠기고 천년 고찰 고운사 경내가 불에 덮여 폐허가 되었다. 연기 오르는 잔해 사이에 덩그러니 남은 범종의 참혹한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건조 기후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 불어닥친 위기다. 미국과 일본에도 산불이 크게 일어나 진화에 애를 먹은 사실을 알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어떤 파장을 낳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찌 기후뿐이겠는가? 정국도 파란의 고비는 넘어섰으나 혼란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불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숙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라는 말은 흉노족에게 잡혀간 미녀 왕소군의 처지를 표현한 한시의 한 구절인데, 봄의 정취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우리 처지를 나타내는 데도 딱 들어맞는다. 난국을 헤치고 봄을 봄답게 느낄 수 있는 마음자리를 찾을 길은 없을까?

‘봄’은 윤동주가 도쿄의 릿쿄대학 1학년에 다니던 1942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쓴 작품의 하나다. 일본 유학 시절의 작품인데 일본의 정경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일본 풍경이라면 매화나 벚꽃이 나올 만한데, 개나리·진달래·배추꽃이 나오고 종달새가 날아오른다. 이 소재들은 북간도와 한반도에서 즐겨 보던 봄의 자연물이다. 그는 도쿄의 하숙방에서 고국의 정경을 떠올리며 봄의 감상을 표현했다. 도쿄의 봄을 체험하면서도 그의 머리에는 조선의 정경이 떠올랐으니, 뼛속까지 조선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 유학 이전에 썼던 작품을 수정해서 도쿄에서 완성했을 수도 있지만, 그의 마음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시의 첫 행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라는 구절은 아주 감미롭다. 시냇물이 돌돌 소리를 내고 흐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혈관 속에도 봄이 시내처럼 흐른다고 상상했다. 윤동주가 창조한 이 아름다운 시구를 내 혈관 속에 새겨 두고 싶다. 시냇가 언덕에 개나리·진달래·배추꽃이 피어나는 정경을 보고 그 자신도 “풀포기처럼 피어난다”고 했다. 자연 경관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자신과 하나가 된 것이다. 윤동주 시에서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봄의 육감적 표현이다. 그의 혈관 속에 봄이 시내처럼 흐르고 그의 마음과 몸이 꽃처럼 피어나자 흥겨운 마음이 종달새를 부른다. 봄이면 보리밭 위로 솟아올라 정겹게 지저귀던 그 종달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하다고 끝을 맺었다. 종달새를 따라 희망과 이상의 세계로 오르고 싶은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일본에 막 유학 온 젊은 대학생의 기분을 살려 이렇게 밝은 정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대상의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흠뻑 받아들여 자기 식으로 변형시킨 점이 뛰어나다. 자연 경관을 투명하게 느끼고 자신의 마음과 동일화한 시의 문맥은 그의 내면이 그만큼 순정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윤동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신생의 동력으로 삼는 건실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윤동주의 시 중 드물게 보는 밝은 작품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일본 유학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독교계 학교인 릿쿄대학에도 군국주의 조류가 밀려들어 1942년 첫 학기부터 전시 체제에 맞추어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고 머리를 삭발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리고 1943년에는 문학부가 강제로 폐쇄되는 탄압을 받게 된다. 윤동주가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전학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봄의 정취를 전신으로 흡수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시대는 고통스럽지만 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음의 지향으로 삼고자 했다.

윤동주의 이 시를 읽으며 오늘의 상황을 대하는 지혜를 얻는다. 자연과 인생사가 봄 같지 않다고 해서 어두운 나락에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과 여름 사이에 끼어 점점 짧아지는 봄이 아닌가. 짧을수록 귀한 봄의 감각을 전신으로 끌어안고 험한 세파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윤동주처럼 마음의 눈을 환하게 열면 우리 혈관에도 봄이 시내처럼 흐를 수 있을 것이다. 역풍에도 피어나는 꽃을 보며 우리 몸과 마음도 풀포기처럼 피어나게 하자. 이른 봄날 하늘로 솟아오르던 종달새를 떠올리며 우리도 한번 마음의 날개를 힘껏 펼쳐보자. 윤동주의 정다운 시 ‘봄’을 외우며.

‘봄’은 미완의 봄일까?

윤동주는 도쿄에서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 동창 강처중에게 편지를 보냈다. 릿쿄대학 로고가 인쇄된 편지지에 편지와 함께 다섯 편의 시를 적어 보냈다. 강처중은 연희전문학교에서 윤동주와 우정을 나눈 벗이다. 그는 편지는 폐기하고 시 다섯 편을 보관했다가 해방 후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에게 넘겨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강처중이 보관한 윤동주 자필 원고를 보면 다섯 편의 시가 연이어 적혀 있는데, 맨 끝장에 이 시가 있고 창작 시기는 표시되지 않았다.

윤동주가 1942년에 쓴 ‘봄’의 자필 원고.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을 때 이 시는 아무런 단서 없이 시집에 수록됐다. 1955년 재판본에도, 1976년 중판본에도 그대로 수록됐다. 그런데 1979년에 나온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물연구소출판부)에는 ‘봄’의 끝부분에 “이하 원고 분실”이라는 구절이 삽입됐다. 이 책의 발행과 편집을 주도한 사람은 문학평론가 임중빈인데, 평소 인물 연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책 뒤에 ‘윤동주 평전’을 써서 수록했다. 윤동주 평전으로는 선구적인 작업이고, 윤동주 생애를 복원하기 위해 윤일주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윤일주에게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임중빈은 이 시 끝에 “원고 분실”이라는 과격한 어구를 넣었다. 다섯 편 시의 맨 끝에 적혀 있고 시가 중간에 끝난 듯한 인상을 주니까 나머지 부분은 사라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1983년 윤일주가 개정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를 낼 때도 이 시 끝에 “서울의 벗이 편지를 폐기할 때에 이 작품의 끝부분도 같이 폐기되었다”는 주석이 첨가됐다. 아마도 임중빈의 의견에 영향을 받아 이런 구절을 삽입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시는 뒷부분이 유실된 불완전한 작품이 된다. 과연 그러한가?

이 작품을 보관한 당사자 강처중은 6·25전쟁 때 행방불명되어 그의 증언은 들을 수 없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뒤에 남은 사람들이 이 시의 형태를 보고 불완전한 작품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에서 상세히 설명한 대로 이 시는 미완의 구조가 아니다. 말줄임표로 끝난 시행은 종달새가 지향하는 하늘의 드높음을 나타내는 암시적 종결구다. 봄기운에서 시작되어 하늘에 이르는 이 시의 구조는 뚜렷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편지 낱장이 폐기되었을 뿐 작품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시는 전후 문맥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서정시다. 이 아름다운 시가 불완전한 작품으로 폐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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