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라는
이날 바로 이 꽃의
따스함이여
けふといふ今日(きょう)この花(はな)のあたたかさ
오늘도 오늘이라는 꽃이 피었다. 힘든 날도 슬픈 날도 즐거운 날도 모두 한 송이 어여쁜 꽃을 틔우는 날이라 생각하니 이 하루가 그저 고맙다. 특별히 기대하는 만남이나 모임이 있는 날이라면 그날의 꽃은 더욱 싱그러워진다.
나는 직업상 새로운 만남이 그리 많지 않지만, 종종 서점에서 열리는 북토크나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겨울 소소하게 하이쿠 짓기 모임을 가졌는데 예닐곱 명씩 서점에 둘러앉아 차를 홀짝이며 골똘히 머리를 굴리면서 종이에 사각사각 시를 쓰는 시간이 꽤 즐거웠다.
하루는 동네 꽃집에 수선화가 있길래 사 들고 가서 함께 가만히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 ‘어깨를 맞대 깃을 한껏 세웠네 겨울 수선화’ ‘서점 사람들 마음에 물을 주는 수선화 자태’ ‘노란 수선화 마음 환해지라고 구십도 인사’ ‘대파 줄긴가? 고갤 숙여 숨는 너 수선화 너니?’ ‘꽃보다 예쁜 까만 눈동자에 물든 수선화’ 다들, “어떻게 지어요?” “저는 처음인데…….” 한 것치고는 한 편씩 꽤 멋진 시를 툭툭 지어낸다.
역시 우리에게는 시가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10분만 시간을 낸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에서 수선화를 볼 때마다 빙긋이 미소가 떠오른다. 그날 그 꽃의 따스함이 떠올라서.
내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다. 그 나라는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자원봉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외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낸 분들이었다.
그때 더듬더듬 나누던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들이 햇살 잘 드는 도서관 회의실 같은 곳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앉아 계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분들과의 하루는 분명 꽃이라 부를 만한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의 궤적을 걷다가 어느 날 우연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때, 그 자리에 내려앉는 인간의 온기는 참으로 따스하여 꽃을 피우기에 알맞다. 행복이란 그런 자리에 싹트는 게 아닐까.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잘 보면 다릅니다. 저는 그걸 행복한 디테일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윤성희 작가님 북토크에서 들은 말이다. 정말이다. 하루하루가 비슷해 보여도, 인간의 삶이 거기서 거기처럼 보여도, 잘 보면 다르다. 잘 보면 보인다. 우리가 한 발 한 발 걷는 길 위에 오늘이라는 꽃이 핀다. 그걸 아는 마음에 행복이 있을지니. 이젠(惟然, 1648?~1711)이 노래한 이 아름다운 하이쿠를 내가 늘 외우고 다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