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식 급등에 이어 암호 화폐 광풍에 서민들의 박탈감이 깊어진다. 이제 서민뿐 아니라 제법 성공한 기업인들까지 ‘박탈감 증후군’을 호소하는 일이 생겼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화려하게 데뷔한 전자 상거래 기업 쿠팡 얘기다.
쿠팡은 상장 첫날 시가총액(기업 주식 가격의 총합) 100조원을 기록,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 중 삼성전자(시총 487조원)에 이어 단숨에 2위에 올랐다. 현대차(45조원) 등 글로벌 기업과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59조원)까지 제쳐버리자 일각에서는 ‘이러다간 돈 한 푼 못 버는 좀비 기업에 정통 기업들이 다 먹혀버리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뉴욕 증시 황태자가 된 스타 기업을 두고 ‘좀비’라니 무슨 말일까. 2010년 창립 이후 지난해까지 줄곧 4조5000억원 누적 적자를 낸 쿠팡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외부 투자 덕분이다. 특히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쿠팡이 1조1650억원의 손실을 내 최악의 위기설이 나돌던 2018년을 포함, 두 번에 걸쳐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를 수혈해 줬다. 투자의 명분은 ‘미래 가치’였다. 손 회장 등 투자자들이 내다본 미래 가치는 2018년 두 번째 투자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현실이 됐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호황으로, 쿠팡은 매출 13조원에 영업손실을 5200억원대로 줄였고, 뉴욕 증시는 쿠팡에 돈 벼락을 안겼다. 손정의 회장도 투자금의 7배가 훌쩍 넘는 25조원대의 지분가치를 인정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자본의 ‘마술’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쿠팡이 미래에 정말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 신청서에서 ‘한국 온라인 상거래 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할 것이며, 한국인의 70%가 쿠팡 물류센터 11㎞ 이내에 살고, 최근 3개월 고객이 1480만명’이라는 점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 온라인 고객들은 쿠팡만이 아니라 여러 업체를 이용하며, 온라인 거래액 규모는 쿠팡이 네이버에 훨씬 뒤지는 데다가, 물류 회사와 합종연횡으로 온라인 상거래 시장이 격변하고 있다는 점은 부각되지 않았다.
뉴욕의 한 글로벌 컨설팅 법인 임원은 “쿠팡 가치를 이렇게까지 높이 산정한 평가 방법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쿠팡이 지금처럼 비용 이하로 물건을 팔지 않기 위해선 독점 구조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막대한 자본으로 경쟁자를 죽이는 게임의 법칙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도 언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국 방송 인터뷰에서 수익이 언제부터 나올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롱텀(장기) 관점을 이해하는 투자자라면 걸맞은 가치로 갚아줄 것”이라고 했고, 앵커가 “2년, 3년? 아니면 한 10년쯤 후?”라고 구체적인 답을 요구했지만 또다시 ‘롱텀’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김 의장은 ‘롱텀무새(롱텀+앵무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김 의장은 여러 인터뷰에서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한강의 기적을 진짜 일군 정주영, 이병철 같은 기업인들이 이를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번 상장으로 김 의장이 7조원대 부자가 된 것은 자본의 논리라 하더라도, 적자 와중에 매년 급여 수십억 원을 받아 온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무엇보다 쿠팡 식의 ‘한강의 기적’을 따르려는 기업이 계속 나온다면 우리 산업계가 어떤 충격을 받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