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보유세 높기로 악명 높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지금 매물로 나와 있는 21억원(170만달러)짜리 아파트의 연간 보유세는 2500만원 정도다. 매달 200만원이 넘는 돈을 월세처럼 내야 하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비슷한 시세의 우리나라 아파트 보유세는 1주택자의 경우 400만원 남짓, 2주택자의 경우 한 채 당 3500만원 정도다.
이렇게 비교하면 우리나라 다주택자 보유세는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랐지만 1주택자는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택 담보 대출을 끼고 집을 사 열심히 일해 갚으려는 실수요자에 대한 배려는 뉴욕이 우리보다 훨씬 정밀하다. 보유세로 낸 세금은 연간 1만달러까지 소득공제가 되고, 집을 사면서 빌린 대출금의 75만달러(약 9억2000만원)까지는 이자를 연방소득세에서 감면해준다. 어차피 낼 소득세를 활용해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지난해 세금의 2% 이상 올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세제를 적용해 세금 증가 상한선으로 정한 30%도 넘게 세금을 폭증시키는 일은 없다. 갑작스러운 시세 변동과 세금에 대한 불안 없이 자기 형편에 맞게 상환 계획을 짜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차별 없이 감정가의 1.72%라는 높은 보유세율을 적용하면서도, 자기 소득으로 내 집을 마련해 오래 보유하는 실수요자를 합리적으로 배려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다(多)주택자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같은 집에 대해서도 다주택자에게는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부가 같은 재산에 대해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 같은 재산의 과표까지 소유자에 따라 다르게 정하는 또 하나의 누더기 세금 정책을 내놨다. 지난 23일 정부는 올해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1주택자의 경우 작년 기준을 적용해 부담을 줄여주기로 하면서, 다주택자에게는 17.2%나 인상된 올해 공시가를 적용해 오히려 더 큰 보유세 폭탄을 안겼다. 정부는 급등한 보유세 부담을 완화시켜 주기 위한 정책이라고 해놓고 다주택자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더 강화시켰다.
정부가 지금껏 줄곧 유지해 온 ‘다주택자 죄악시’ 정책 기조는 이번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똑같은 재산을 어떤 사람에게는 10억원짜리, 어떤 사람에게는 8억원짜리로 쳐서 세금을 다르게 매기는, 시장판 흥정 같은 세금 정책을 부끄러움도 없이 내놨다. 재산이 적은 다주택자가 재산이 훨씬 많은 1주택자보다 몇 배 많은 보유세를 내는 모순도 심화하게 됐다. 40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의 올해 보유세는 1900만원 정도인데 18억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사람의 보유세는 7000만원에 육박해 세 배가 넘게 됐다.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다주택자를 옹호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눠 가져야 할 사회적 공기(公器)인 집을 독점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악당’이라는 정의감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후 대책으로 빌라 몇 채를 구입해 세를 놓는 사람은 죄인이지만, 40억원이 넘는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은 보호받아야 할 1주택자라는 식의 시대착오적 관점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더 덧대 고칠 수도 없을 만큼 누더기가 된 부동산 세제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명심해야 할 것은 무조건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방식의 세제 개편은, 벌금처럼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책 못지않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다. 10억원이 넘는 서울 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의 보유세가 승용차 두세 대의 자동차세 수준에 그치는 것 역시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종부세는 재산의 개수가 아닌, ‘종합세’가 진짜 추구해야 할 재산의 액수와 소득 등을 고려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이익이 걸린 세제를 손보는 일인 만큼 그런 개편에도 물론 논란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부유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냐’는 푸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편이 누더기 차별 세제보다는 훨씬 옳은 방향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