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의 상설시장인 터미널시장을 찾았다. 영광은 최근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에 나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고향. 시장 상인들에게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복잡한 표정들을 짓기 시작했다. 영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한 중년 남성은 “이낙연이 왜 민주당을 탈당했는지는 개딸들에게 물어봐야 한다”며 일단 목소리를 높였다. “이낙연이 괜히 탈당을 했겠나. 탈당한다고 하니까 그제야 100명이 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이나 하고…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이 남성은 “이낙연 전 대표를 붙잡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바짓가랑이 잡고 대화를 시도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제 호남도 무조건 민주당 지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40대 여성 상인의 말은 이 남성과는 결이 달랐다. 이 여성은 “어쨌든 당이 둘로 쪼개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젊은 유권자들은 무조건 민주당이라는 의식이 적지만, 40대부터는 민주당에 대한 생각이 강한데 일단 표가 갈리게 생겼으니 문제”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 여성은 “이낙연 지사도 결국 배신자로밖에는 보이질 않는다”면서 “지금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면 이낙연에 대해 좋은 얘길 안 하신다. 이분들 설득하려면 새로운 걸 잘 만들어 와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비교적 젊은 한 30대 남성은 앞서 두 사람과는 또 다른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지금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데 무엇에 대한 배신인지 모르겠다. 민주당을 나가서 배신인지, 이재명에 대한 배신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난 이준석 대표와 새로운 걸 잘 만들어오면 지지할 생각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는 호남 지역의 유권자들이 ‘이낙연 신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당장 호남의 표심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지지 철회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업체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은 전주보다 무려 20.5%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이준석 신당의 지지율 상승폭은 전주 1.8%포인트에서 12.4%포인트로 크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른 조사에서도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이 큰 폭으로 빠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단 여론조사상으로 보면 민주당에서 빠진 지지율이 이준석 신당 등 제3당으로 옮겨 가는 양상이다. 민주당 텃밭에서 지지율이 요동치는 모습은 총선이 불과 세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듯하다.
“신당 어떻게 만드냐가 중요”
호남 유권자들의 경우 이미 제3지대 돌풍을 일궈낸 경험이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3당으로 안착한 데는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했다. 당시 국민의당은 전남 10석 중 8석(민주당 1석, 새누리당 1석), 전북 10석 중 7석(민주당 2석, 새누리당 1석), 광주 8석 모두 석권 등 전국적으로 38석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3지대와 신당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호남 유권자들이 꽤 있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앞으로 이준석 대표와 새로운 걸 어떻게 만들어오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면서 “이 지역은 20대 총선 당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왔을 때 후보를 보지도 않고 국민의당만 찍었었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과 호남 홀대론이 불거진 상태에서 ‘새정치’를 외치던 안철수의 호소가 호남에서 먹혔다는 것이다.
이낙연 신당 측도 호남에서의 제3지대 돌풍 재연을 기대하는 눈치다. 2만명을 넘긴 신당 발기인 중 호남 지역에서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낙연 전 대표가 전남지사를 세 차례나 역임하는 등 지역기반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이낙연 전 대표와 연을 맺은 지자체장 출신들이 신당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도 지난 1월 15일 전남CBS 방송에 출연해 정당법상 200명의 100배가 넘는 발기인을 이미 모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호남 쪽 참여도 예상보다 많다”면서 “양당이 폭주하지 못하게 중간에서 조정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그런 정도의 의석은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돌풍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이낙연, 이준석 신당이 주도하는 지금의 3세력은 안철수 돌풍 때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대선 주자로 줄곧 언급될 만큼 거물급이었지만 신인으로서의 참신함이 큰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준석, 이낙연의 경우는 그런 참신함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의 한 언론인은 “호남 유권자들에게 이준석은 보수의 프레임이, 이낙연은 배신자의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이 두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호남 유권자들에게 더 큰 대의명분이 설득력 있게 다가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잃어버린 개딸 민주당에서 오죽했으면 나갔겠느냐’는 동정론도 작용하고 있지만, ‘결국 이재명 대표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철 지난 세력 아니냐’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은 과거 문재인 공동대표가 이끈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을 때와는 다르게 여전히 호의적이라는 여론도 높다. 이낙연 전 대표로서는 이런 비판론을 뚫어내기 위해서라도 호남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명분을 만들어오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로 보인다.
이낙연, 이준석이 각개 약진하는 것보다는 빅텐트에 성공할 경우 호남에 미칠 파괴력이 더 큰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호남에 대한 구애를 강조했던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달리 이번 제3지대 빅텐트는 진보와 보수의 대통합 연대이기 때문에 국민의당 때보다 더 큰 명분과 호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만약 이준석과의 빅텐트에 실패할 경우 이낙연 신당만으로는 호남에서 별다른 파괴력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높다. 이낙연 신당 홀로로는 가능성이 없고 지역기반이 아닌 세대기반의 이준석 신당과 연대할 경우에야 적잖은 시너지 효과와 새로운 정치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이 텃밭을 지켜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도 변수다. 지금도 호남 곳곳에는 “국민을 지킵니다” “민생을 살립니다” 등 민주당이 걸어놓은 현수막들이 압도적인 숫자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호남에서 빠지고 있는 것은 대표 피습과 탈당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다 신당의 일시적 효과까지 겹쳐서 벌어지는 단기 현상에 불과하다”며 “결국 호남 유권자들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명분을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