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부터 선거 여론조사의 방식에서 부분적으로 변화가 있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여론조사의 피조사자 선정·결과 분석에서 ‘60대’와 ‘70세 이상’을 구분하도록 했다. 애초 ‘선거여론조사기준’에서는 노인층을 ‘60세 이상’으로 묶어서 조사할 수 있었는데 이를 분리하도록 하는 조치다.
왜 분리해야 했을까. 일단 유권자의 인구 구조가 변해서다. 60세 이상으로 묶을 경우 이 연령대가 전체 선거인수의 약 31.89%를 차지한다. 20대 13.82%, 30대 14.82%, 40대 17.76%, 50대 19.69%와 비교했을 때 그룹의 규모가 지나치게 두꺼워진다. 60대와 70대 이상을 분리한다면 60대는 17.4%, 70대 이상은 14.5%로 다른 연령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여심위가 60대 분리의 또 하나의 이유로 ‘60대와 70대 이상의 정치성향 차이’를 든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들 연령대를 분리해 조사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선거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치성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동안 60대 이상은 ‘노인층’이고 이들은 ‘보수화된 세대’라는 게 그간의 통설이었다.
여론조사 ‘노인층’에서 떨어져 나온 ‘60대’
그렇다면 현재의 60대는 이전의 60대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일까. 60대는 그간 보수 정당의 주력 지지층으로 분류됐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60대 이상의 고령층은 한 팀이 돼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세대별 예상 득표율에서 60대는 64.8%가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70대 이상(69.9%)과 함께 윤 대통령 당선의 최대 공로자가 이 세대다.
그런데 최근의 60대 민심 흐름은 불과 2년 전과 비교해 사뭇 결이 다르다. 보수적 경향 일변일 거라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정치성향의 차이’라는 여심위의 인식이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60대 이상이라는 노인층 동맹 집단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모양새다. 60대만의 특이점이 어느 정도 드러난 대목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다.
한국갤럽의 정기조사인 ‘데일리 오피니언’에 나오는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좇아가 보자. 지난 3월 4주 차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59%가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34%만이 ‘잘하고 있다’고 했다. 60대의 경우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49%였다. 70대 이상에서 27%만이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60대의 이탈은 최근 6개월간 부정평가를 추적해 봐도 드러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난해 10월 2주 차 42%로 출발한 윤 대통령에 대한 60대의 부정평가는 2024년 새해 첫 조사에서 50%까지 올랐고 최근 또다시 이에 근접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조사된 부정평가에서 60대는 70대 이상과 대략 15%포인트 내외의 차이를 보이며 높은 수치를 유지해왔다.
60대 민심의 독립 행보와 함께 주목해 볼 건 전체 여론 구도의 변화다. 기존 정치 문법에 따라 그동안 정당들은 ‘4050’과 ‘노년층’의 대립을 중심에 두고 표밭을 갈아왔다. 4050은 주로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진영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고 반대로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정당 지지세의 버팀목이었다. 2030은 부동층이 가장 두꺼운 세대로 ‘스윙보터’로 불리며 캐스팅보트 노릇을 했다.
2022년 대선은 이런 구도가 잘 드러난 선거였다.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4050세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각각 60.5%(40대), 52.4%(50대)의 지지를 보냈다. 반면 60대와 70대는 각각 64.8%, 69.9%가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 20대와 30대에선 절반씩 표가 갈렸다. 20대에서는 이 후보가 47.8%, 윤 후보가 48.4%를, 30대에서는 이 후보가 47.8%, 윤 후보가 45.5%를 얻었다.
한 몸으로 움직이던 60대는 왜 그 윗세대에서 떨어져 나갔을까.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50대와 60대 일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화돼 가는 경향이 있는 세대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세대로 불렸던 그룹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맞물린 세대가 점점 60대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통 특정 세대의 정치 성향을 따질 때는 두 가지 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관찰되는, 생애주기에 따라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는 변화다. 보통 연령효과(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어가는 경향)라고 부른다. 연령효과는 우리 사회에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질 거라는 전망의 근거였다.
60대한테는 연령효과가 먹히질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다. 이 때문에 노년층 유권자는 그 어느 때보다 두껍다. 이번 22대 총선 기준 60세 이상 유권자(선거인) 수는 4년 전인 21대 총선 때보다 210만559명이 늘었다. 비중으로 보면 21대 총선과 비교해 60세 이상 비중이 4.5%포인트 많아졌다. 20대(13.82%)와 30대(14.82%)를 합한 것보다 3.25%포인트 높다.
연령효과가 일반적 현상이라면 앞으로의 선거는 보수에 매우 유리한 게임이 될 거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건 이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보수화된 세대가 점점 많아질 테니 말이다. 게다가 현재의 60대 이상은 투표도 열심히 한다. 투표율 66.2%를 기록해 가장 뜨거운 총선이었던 지난 2020년 선거 때 60대는 80.0%, 70대는 78.5%가 투표장으로 달려갔다.
정치 성향 파악을 위해 고려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특정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그 세대만의 특유 정치 경향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세대효과(cohort effect)’라고 한다.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미국 ‘뉴딜 세대’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은 유럽의 ‘68세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강윤 전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60~64세까지는 기존의 보수 1세대와 정치적 정서가 다르다”고 본다. 이들은 20대 중후반부터 50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 정치사의 격변을 많이 목도해왔던 세대다. “현재 60~64세 중에는 학생운동과 1980~1990년대 시민운동 등을 청년기부터 겪어온 분들이 많다. 반권위주의나 반독재가 체화돼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학생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민주의 가치나 인권을 중시하는 인식이 상당히 보편화돼 있다.”
세대효과로 설명할 때 60대에 새로 진입한 이들을 보통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로 묶어서 설명한다. 1960~1969년생인 86세대는 보통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현재 60~64세에 포진해 있고 해가 갈수록 속속 60대로 편입된다. 그리고 이 세대에 관한 연구는 과거부터 종종 이루어져 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거 약해져
연령 효과가 86세대한테는 다른 세대보다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연구를 보자. 현재의 60대가 50대였던 2013년 노환희·송정택·강원택 교수(이상 서울대)가 펴낸 논문(‘한국 선거에서의 세대 효과: 1997년부터 2012년까지의 대선을 중심으로’·‘한국정당학회보’ 통권 제12권)을 보면 1960~1969년 출생 유권자들의 대선 투표를 분석해보니 50대에 진입해서도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2012년 사이 치러진 대선에서 앞선 세대들이 연령효과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하던 것과는 달리 86세대에서는 진보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들 86세대의 ‘세대효과’가 유지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86세대가 60대에 진입하면서 치러진 첫 선거는 2022년 대선이다. ‘86세대와 세대 효과의 종언: 1992~2022 대선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1960년대생을 연구했던 배진석 경상대 교수는 1960년대생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투표 특성을 보인다고 본다. 배 교수는 그 이유로 “청장년 시기에 보였던 투표 선택의 특성이 나이가 들면서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세대에서는 현재의 40~50대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보수화하는 것과 비슷한 징후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보며 이런 ‘완만한’ 1960년대생의 보수화 속도는 ‘세대효과’로 부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배 교수는 “실제 민주화 이후 실시된 총 8회의 대선에서 1960년대생이 보수 후보보다 진보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선거는 세 번에 불과하다. 1997년, 2002년, 2017년 선거 때가 그렇다. 이번 대선을 포함해 나머지 5회의 대선에서는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생들이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이라고 인식하지만 실제 투표장에서 진보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60대의 변화는 연령효과의 덕을 본 보수가 갈수록 선거에서 유리해진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60대는 이번 총선 정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대통령 부정평가’ 경향만 보이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 응징을 기치로 내건 조국혁신당이 얻은 정당지지율은 12%(2024년 3월 26~28일·한국갤럽)였는데 60대 지지율은 전체보다 높은 13%였다. 2030보다도 훨씬 강한 지지세다.
정치권 전장은 60대로 이동 중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연령효과에 따라 보수 정당이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지만 60대 초반에서는 진보적 성향이 발견되며 정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바라보는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는다. 윤 센터장은 달라진 60대들의 성향을 사회경제적 요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의 60대들은 나이가 들어도 과거처럼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세대가 아니다. 이슈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관련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도 있고 자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한다. 이전부터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세대였으니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세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류가 형성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둘러싼 생활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보수화되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고 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 사라지면 수세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경제활동에서 퇴장이 늦어진다면 그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보수화의 시간도 그만큼 늦춰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60대의 고용률은 58.3%를 기록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치권의 전장은 점점 60대 쪽으로 이동 중이다. 2009년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성인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수 우위 연령은 44세였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가 10%포인트 이내였던 연령대는 40~48세였다. 선거의 중심이 40대였다는 뜻이다.
2017년 말 한국갤럽의 데일리 오피니언 월별·연간 통합 자료에 따르면 보수가 진보를 역전하는 나이는 52세로 바뀌었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가 10%포인트 이내로 비교적 적은 52~58세가 정치권의 승부처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갤럽의 같은 조사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역전되는 연령은 56세로 4년 늦춰졌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가 10%포인트 이내로 비교적 적은 나이대는 53~59세다. 60세도 보수가 35%, 진보가 23%, 중도가 33%였다.
다음 대선이 열리는 해는 2027년이다. 57~59세가 60대로 편입돼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런 세대 변화가 대선까지 이어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정당 체질 민주화될수록 60대를 잡는다
장우영 교수는 이런 흐름하에서는 정당의 체질이 민주화될수록 선거에서 더 유리할 거라고 봤다. “보수의 출발점은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와 닿아 있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에도 이종섭 호주대사 일과 같은 변수가 없었다면 60대의 표심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 아니었나.”
정부·여당의 변화가 담보된다면 60대의 표심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실버 민주주의(고령화가 진행된 국가에서 노인들이 투표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정치권이 고령화 인구에 편중된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것)의 맥락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2~3년 뒤의 일이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 변화와 같은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윤 소장은 “보수가 점점 불리해질 거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다. 이전보다 60세 이상의 보수화가 옅어질 순 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60세 이상이 덜 보수화될 거다라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변화된 환경은 다가올 선거에서 60대의 표심을 둘러싼 격전(激戰)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보수의 텃밭이었던 60대는 그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표밭이 돼 가고 있다.
※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