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22대 총선 관련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7일 여의도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용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권 도전을 마음먹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국민의힘이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실무형’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한 바로 다음날, 한 전 비대위원장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는 일주일 만에 나돈 소문이다. 한 전 위원장은 4·10 총선 다음날인 지난 4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놨지만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겠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국민만 바라보면 그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떠나지 않겠다’던) 제가 한 약속은 지키겠다”며 정계 은퇴와는 거리를 뒀다. 한 위원장이 여운을 남기며 퇴장하자 정치권에서는 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에 복귀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사퇴 이후 한 전 위원장은 직접 입장을 전하기 위해 언론을 접촉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을 함께했던 비대위원, 국민의힘 사무처 등과도 소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은 문이 굳게 닫혔다. 비상대책위원장실 소속이던 당 사무처 직원들은 인사대기 상태다. 장동혁 사무총장의 사퇴로 사무총장 자리 역시 공석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 헌정회관 앞에는 한 전 위원장을 응원하며 복귀를 촉구하는 지지자들의 화환이 줄지었다. 화환에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돌아오세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한 전 위원장 팬카페 ‘위드후니’ 회원들은 지난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자발적 참여로 화환을 보내는 화환전시 이벤트를 진행했다.

팬클럽을 넘어 여권 지지층 내 한 전 위원장의 지지도도 여전하다. 지난 4월 16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한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 차기 당권 주자로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4월 13~14일 만 18세 이상 전국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을 누가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국민의힘 지지층(331명) 중 44.7%가 한 전 위원장을 꼽았다. 뒤이어 나경원 서울 동작을 당선인이 18.9%,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9.4%, 유승민 전 의원이 5.1%를 기록했다. 4월 17일 발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한 전 위원장이 22.7%의 지지도를 기록해 차기 여권 대권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다. 2위를 기록한 응답은 ‘적합한 인물이 없다’(21.1%)였다.

지지층 사이에선 당대표 선호도 여전히 1위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시기와 국민의힘이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기로 결정한 시기가 맞물리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위원장의 당대표 선거 등판설이 흘러나왔다. 국민의힘은 지난 4월 16일 22대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 이르면 6월, 늦어도 7월에 차기 당대표와 지도부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당을 재정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총선 당시 ‘한동훈 원톱’ 체제의 한계를 언급했던 신평 변호사는 한 전 위원장의 당권 도전 풍문에 대해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한 전 위원장은 자신의 대권 도전을 위한 행보로 총선을 이용했다. 당권을 넘어 대권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며 한 위원장의 이른 재등판을 점쳤다. 신 변호사는 “한 전 위원장이 총선 과정에서 지방에 방대한 조직을 형성해 놓은 만큼 빠르게 재등판할 것이라 본다”며 “과거 대선 과정에서 생겼던 ‘친윤(친윤석열)’ 조직을 전부 ‘친한(친한동훈)’·반윤(반윤석열)’ 조직으로 바꿔버렸다. 한 전 위원장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안중에는 윤 대통령도, (선거 패배 후 정치적 휴식기를 가진다는) 기존의 정치적 문법도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 전 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한 전 위원장이 이번 전당대회에 등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비대위원은 지난 4월 15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본인의 의지를 떠나 정치권역을 벗어나기 힘들 거라고 본다”며 한 전 위원장의 정치권 잔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 뛰어들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본다. 맺고 끊는 부분은 확실한 분”이라고 강조했다.

민경우 전 비대위원 역시 한 전 위원장이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 전 위원은 “정치는 재개할 텐데, 언제 돌아올 것인지가 문제다. 특별한 정보는 없지만 (총선으로) 건강이 많이 무너진 걸로 예측된다. 또 당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처리 국면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어 부담이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조금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낫다고 본다”고 전했다. 한 전 위원장은 유세일정 강행군에 의한 탈진 증상으로 총선 본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9일 마지막 거리 인사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한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은 만큼 최소한 1년의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전 고문은 4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한 전 위원장이) 이번 전당대회에 당장 나타나게 되면 또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냥 무조건 쉬면 안 되고 자기 이미지를 일반 국민에게 어떻게 형성하느냐를 노력해가면서 시계를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장 재등판하면 국민들도 피곤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박 평론가는 한 전 위원장이 향후 대권을 고려한다면, 정치적 휴식기를 가지고 이번 당권 경쟁은 쉬어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 평론가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한 전 위원장과 견줄 수 있는 인물이 많지 않은 만큼, 이번에는 한 전 위원장이 패장으로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쉬어야 한다. 당장 재등판하면 국민들도 피곤하다. 총선 과정에서 ‘벚꽃 피는 날 김포는 서울시가 돼 있을 것이다’ ‘국회를 통째로 세종시로 옮긴다’ 등 수많은 말을 쏟아냈는데, 그 말들을 모두 책임지기도 어렵다”며 “휴식기를 가지고 있으면 국민의힘 당원들이 귀환을 요구할 텐데, 아마 2026년 지방선거 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어 그는 “정치인에게 정치적 휴식기란 성찰과 이미지·정책 변신을 도모하고, 대중이 그의 복귀를 기다리며 그리워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등 대권주자로 꼽히거나 실제 대권에 오른 거물 정치인들은 선거나 당권 경쟁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적 휴식기를 가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패배 직후 잠행정치를 이어가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유가족들의 곁에서 목소리를 내며 공개적 행보에 나섰다. 문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촛불 정국,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권을 쥐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2021년 말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패배한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지난해 6월 1년여 만에 돌아왔다.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직에서 중도 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듬해 영국 유학을 떠났다가 2013년 귀국했고, 2014년에는 페루 리마시청과 르완다 키갈리시청에서 도시행정분야 중장기 자문단 활동을 수행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과 2020년 21대 총선에서 두 번의 낙선 끝에 202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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