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 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개헌론(改憲論)이 정치권에서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5일 “당 자체 개헌특위를 출범시켜 개헌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고, 더불어민주당에선 비명계를 중심으로 “개헌에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며 이재명 대표의 개헌 논의 참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일부 대선 주자급 인사는 개헌 관련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가세하고 나왔다. 여야(與野) 원로들도 “늦어도 차기 대선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 개헌특위가 내주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 당 자체 개헌안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6일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를 여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이날 “이재명 대표님을 정중히 모시고 싶다. 개헌의 열쇠를 쥐고 계신 이 대표가 개헌에 나서 달라”고 밝혔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을 이끄는 이 대표의 개헌 논의 참여를 촉구하고자 ‘공개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는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5년 단임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의 실패’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내주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위원장을 맡는 당 개헌특위를 발족하기로 하는 등 개헌론을 본격 제기하고 나섰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헌법 자체가 87년 체제 이후에 여러 사회 변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게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며 “정치 체제 부분이라도 손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력 구조 개편에 집중한 ‘원 포인트’ 개헌을 추진하자는 뜻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7~8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는데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현행 헌법 체제에 문제가 많다”면서 “행정과 입법 권력이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동시에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 해산권을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도 오는 1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열기로 하는 등 개헌론에 가세했다. 여권 관계자는 “오 시장은 개헌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차기 대통령이 임기를 3년으로 줄이고, 대통령 권력을 단순히 국회가 선출한 총리와 나누는 이른바 ‘이원(二元) 정부제’에서 나아가 중앙 권력을 지방으로 대거 이양하는 권력 분산형 개헌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개헌론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에서도 설 연휴 이후 비명계를 중심으로 개헌론이 나오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날 MBC라디오에 나와 “다음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계엄을 방지할 수 있는 원 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지사는 이재명 대표가 최근 “개헌보다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고 한 것과 관련해 “단죄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내란 극복의 완성은 개헌”이라고 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개헌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새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은 최근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이) 개헌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을 고치려면 국회에서 재적 의원의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물꼬를 트려면 과반 의석의 민주당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공약한 이 대표는 최근엔 개헌과 관련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