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연금 개혁과 관련해 모수 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을 먼저 하고 구조 개혁(연금 제도의 틀을 조정)을 나중에 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지만 구체적 협상은 시작도 못 하고 있다.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소득 대비 납부하는 보험료 비율, 소득대체율은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수령하는 연금액 비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보험료율(현행 9%)은 13%로 (여야 간) 이견이 없고, 소득대체율(40%)은 국민의힘의 44%와 민주당의 45% 사이에 1%p만 차이가 있다”며 “합의가 가능한 부분부터 개혁의 물꼬를 틔워보자”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11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한다면, 국민의힘은 모수 개혁부터 논의하는 것을 수용하겠다”며 “반드시 구조 개혁과 수익률 개혁 논의가 이어지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해왔다. 그런데 지난 6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의 ‘선(先)모수 개혁’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이처럼 양당 지도부가 전향적 태도를 보였음에도 논의가 시작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서, 무엇을 먼저 협상할 것인지를 놓고 양당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연금특위를 신설해 ‘보험료율 13%’부터 먼저 확정한 다음, 소득대체율은 구조 개혁과 같이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보험료율 13%’뿐 아니라 ‘소득대체율 44%’도 같이 결론 내고 이후 연금특위를 구성해 구조 개혁을 장기 과제로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가 설치될 경우 위원은 여야 동수(同數)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국회 보건복지위는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 등 야당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연금 개혁은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까지 연관된 사안이므로 개별 상임위 차원에서 다룰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모수 개혁은 보건복지위에서 하고, 구조 개혁은 연금특위에서 협의하자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양당이 애당초 연금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연금 개혁”이라며 “국회에서 하루속히 합의안을 도출해 주길 바란다.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최 대행은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운영된다면 2041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56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며 “누구도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더 내고 덜 받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