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 대통령은 모두 고령에 속했다. 만 57세에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60세가 넘어서야 대통령이 됐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 출마하는 이들이 대개 노회한 정치인이었던 까닭이다. 오는 6월 3일 치러질 대선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한 김문수 후보가 74세, 홍준표 후보도 71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도 61세다. 만 40세인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제외하면 가장 젊은 축인 한동훈 후보 역시 1973년생으로 52세다.
젊다는 것은 물론 한국 정치인의 평균에 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다지 젊지 않은 이들이 젊은 이미지로 청년의 표심에 소구하려니 당혹스러운 일도 생긴다. 이를테면 한 후보는 지난 4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서태지처럼 시대를 바꾸는 대통령이 되겠다.” 자신이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는 젊은 세대임을 가수 서태지의 ‘문화혁명’에 빗댄 것이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서태지는 33년 전인 1992년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이라기엔 서태지는 2025년 대한민국에서 지나치게 오래된 인물인 것이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한 후보는 라디오에 출연해 “젊은 척하려고 말씀드린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여의도 청년들, 좋은 표본 아니다”
전문가들은 서태지 해프닝을 두고, 청년을 피상적으로 바라봐 왔던 우리 정치권의 오랜 습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으로 꼽았다. 정책보다는 공감받기 어려운 구호들만이 앞서고, 실제 정책에서 청년층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어젠다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표심’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 자체가 청년을 진지한 정치적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연금개혁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논의할 때는 실제 이해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청년층을 배제하다시피 해놓고, ‘먹이’ 던져주듯 시혜적 청년정책을 던져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 후보의 발언에서 ‘민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22년 대선이 펼쳐지던 2021년 8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가 ‘민지야 부탁해’라는 캠페인을 펼쳐 조롱을 받은 일이다. 해당 캠페인은 MZ세대에게 직접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받고 이를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때 MZ의 두 문자를 따서 ‘민지’라고 의인화한 것을 두고, 시대에 뒤떨어진 감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처럼 대선 정국이었던 당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PC방을 찾아 게임 체험을 한다거나,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걸그룹 춤을 추며 릴스를 찍는 등 ‘청년 행보’를 보이던 때다.
익명을 요구한 유명 광고대행사의 한 기획자는 “정치권을 잘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을 타깃으로 하더라도 진지한 기획으로 장기적 콘셉트를 잡아가는 브랜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결국은 ‘요즘 애들이 이런 거 좋아한다며’라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감각 자체가 올드한 데다 레토릭만 있는 빈곤한 발상에 근거하다 보니 먹힐 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가 짚은 문제점은 보다 근본적이었다. 지금 정치권에 있는 청년들은 당내 주류 의견에 반발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각이 떨어지는 메시지가 나와도 별다른 의견을 낼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표본의 오류다. 청년 정치를 한다고 얘기하는 그룹에 나도 속하지만, 지금 정치권의 청년들은 동세대 청년들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의견이 정치권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긴다. 한 전 대표의 서태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서태지를 좋아한다면 주변에서 말리기 힘들지 않겠나.
이는 한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반의 문제일 것이다. 서태지 얘기에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미 서태지가 활동하던 시기에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하는 등 시대전환을 한 번 한 것 아닌가?’” 정말 한 후보는 2023년 12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연설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차용했었다. 한 후보 캠프에서도 ‘서태지 언급을 후보가 하자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는 후문이 흘러나온다.
“청년정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꼭 이런 ‘레토릭’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선 본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정치권은 이번에도 앞다퉈 ‘청년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비판하며 “청년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했고, 김동연 더불어 민주당 예비후보는 청년이 비정규직으로 7년 근무하면 6개월의 유급휴가를 주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이 지난 3월 ‘게임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것이 2030 남성을 잡으려는 시도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정책이라는 것을 따로 낸다는 것 자체가 그릇된 발상이라는 평이 나온다. 청년 논객인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작가는 주간조선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려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라고 질문하자 “그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어떻게 청년정책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있겠나. 전체적인 국가 산업, 경제정책이 있으면 거기서 청년 일자리 대책도 나올 것이다. 전체적인 외교 방향이 있으면 거기서 청년들의 외교관도 드러날 것이다. 기본적으로 청년을 국가를 생각하는 시민으로 본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청년은 ‘애들’이니까 뭔가를 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고, 오히려 청년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거세하는 꼴이다. 청년들이 요구하기 시작한 사안들이 대한민국의 지난 20~30년의 변화상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세계적 전환기에 한국 청년층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청년들도 결국은 인구감소, 노동시장, 부동산 같은 구조적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수 대표는 “윤 전 대통령 집권기엔 ‘종북세력 척결’ 같은 것을 어젠다로, 민주당 집권기에는 뭐만 하면 ‘검찰개혁’을 내걸었는데 한국이 처한 진짜 문제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며 “이를테면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과의 관세 문제로 난리인데, ‘우리나라는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냐’는 의견이 청년들 사이에서 많다”고 했다. “청년들이 많이 보는 ‘슈카월드’ 같은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터져나오는 의견들을 보면, 청년들은 노년 세대 부양 부담이 커질 것에 대해 상당히 큰 우려를 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는 손대지 않고 단편적 정책을 쏟아내니 청년들에게 소구할 수 없는 것이다. 15년 전 반값 등록금을 시작으로 여러 지원책이 나왔기 때문에, 이미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청년정책에 대한 반응도는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연금개혁, 게임특위… 청년은 허울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연금개혁 문제다.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통과됐지만,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표, 기권표가 두드러졌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재섭·우재준 의원, 민주당에서는 이소영·전용기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이번 개혁안을 비판했다. 20~40대의 손해는 가중되고 50대 이상은 이득을 보는 구조라는 것이 비판의 핵심인데, 사실 다른 어떤 정책들보다도 청년들에게 영향이 직결되는 문제다. 임 작가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론 주도세력은 40~60대의 자산 보유자들”이라며 “그 세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강하게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계급장 떼고 공론화해야 할 문제 아니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렇다 보니 이른바 ‘청년정책’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동수 대표는 청년들의 연금개혁에 대한 반발을 정치권이 ‘훈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연금개혁을 추진한 이들은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미래세대가 더 많이 받는데 왜 화를 내느냐’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은 애초에 국민연금에 강제 가입되는 전통적 정규직이 많지도 않다. 인구 구조 자체가 역피라미드형이 되면 국고를 투입해도 연금은 고갈된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서는 청년들 이야기를 듣지 않고 본인들 뜻대로 반영하면서 무슨 청년 정책을 제시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가.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국회 연금특위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진보진영에서 비판이 나오자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다.”
민주당이 지지율이 취약한 2030 남성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게임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의 비판이 나온다. 청년 공략은 허울이고, 실제로는 업계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을 조명하고 이용자와 산업을 아우르는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이재명 대표가 게임특위 출범식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게임에 대한 사전검열을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낸 이철우 변호사(게임이용자협회장)는 “특위 구성을 보면 게임 이용자보다는 업계를 위한 위원회가 아닌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게임업계 전문가는 “지금 게임특위 구성을 보면 유저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행동을 할 때 이를 비판했던 인물들이 많다”며 “특히 사행성이 있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등 산업계를 대변하고, 이른바 페미니즘을 위시해 게임물 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려는 인사들과 가까운 경우도 적잖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