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4월 15일 광주 서구 기아 오토랜드 광주공장에서 자동차산업 현장 시찰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욱 현대차·기아 부사장, 최준영 기아 사장, 한 권한대행, 문재웅 기아 광주공장장,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photo 뉴시스

지난 2월 초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한 친윤계(친윤석열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범보수 진영에서 1위를 달리는 상황이었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친윤계 의원은 “김 장관도 훌륭하지만 더 좋은 사람도 있다”며 “다음은 경제 전문가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동안 거론되던 보수 잠룡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후보로 점찍어뒀다는 뜻이었다.

이 친윤계 의원은 당시 기자에게 누구인지를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전 국민이 다 아는 경제 전문가이면서 그동안 (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고, 막판에 치고 나오면 되니 미리 거론될 필요도 없다”고 언급한 사람이 바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였다는 것을 최근 확인해줬다. 당 경선 후보 등록 기간부터 떠올랐던 ‘한덕수 대망론’이 국민의힘 내부에선 최소 두 달 전부터 나온 얘기인 것이다. 한덕수 대행 카드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주류가 장고 끝에 꺼내든 카드다. 국힘에서 이 카드를 띄우는 것은 코너에 몰려 있는 국민의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도 당내 후보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끌어들여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치 신인 윤석열’을 내세운 대가는 컸다.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구성부터 정부 인사에까지 광범위하게 개입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권 초부터 대통령실 인원의 대부분을 교체한 일도 여기서 비롯됐다. 국민의힘은 새로운 인물을 찾지 못한 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상황까지 맞닥뜨렸다.

그나마 윤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정도가 새로운 인물이지만, 당 주류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비호감은 상상 이상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2년 반 전의 상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또다시 내부 인물로 어렵다고 판단한 국민의힘 주류는 외부 인물 수혈을 통해 불리한 대선 국면을 타파하려 하고 있다. 그 외부 인물로 점찍은 것이 한 대행이다. 오히려 당 주류가 아닌 윤 전 대통령이 미는 인물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덕수 띄우자… 두 달 전부터”

일단 여론은 한덕수 카드에 반응하는 모양새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지난 4월 13~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2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보수후보 당선을 지지한다는 응답자(349명) 중 한 대행을 지지하는 비율은 29.6%로 1위였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21.5%,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14.1% 순으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한 2002년 대선의 ‘단일화 모델’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구도라고 불린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덕수 대망론을 내세우는 쪽에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통해 이 전 대표를 뛰어넘는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로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14일 TV조선 유튜브방송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막판 단일화를 하지 않았나”라며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10~20%포인트 차이가 난다면 자연스럽게 ‘그랜드 텐트’나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 지지율로 독주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면서 ‘이회창 대세론’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정몽준, 노무현 후보는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당내 경선 초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 후보는 이 후보를 2.3%포인트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

한 대행의 출마를 밀고 있는 박수영 의원은 지난 4월 16일 김문수 경선 후보 캠프에 정책총괄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박 의원은 ‘경선 후 김 후보와 한 대행의 단일화로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그게 대선에서 승리할 유일한 방법이고 필승의 방법”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2002년의 단일화 사례처럼 국민의힘은 한 대행을 내세워 이재명 후보의 독주 체제를 깰 수 있을까.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한 대행 무소속 출마 후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시나리오에 대해 “이재명 전 대표를 이길 가능성은 70%”라고 내다봤다. 채 교수는 한 대행이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국기결집효과(위기 사태에 국가 지도자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와 ‘줄탄핵의 피해자’라는 유리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후보 쪽에선 ‘내란 프레임’을 씌우려 할 텐데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은 한덕수와 한동훈뿐이다. 한 대행은 민주당 줄탄핵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직무에 복귀했는데 민주당에서 다시 탄핵하려고 하지 않았나. 정치 공학적으로 생각할 때 김문수 후보로는 중도층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한 대행은 (무소속으로 나온다면) 탄핵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서 중도층 유권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

탄핵 정국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후보는 줄곧 보수 진영 1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친윤계에서 한덕수 차출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김문수로는 이재명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과 함께 ‘그래도 한동훈은 안 된다’는 이해관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채진원 교수는 “집권 여당의 후보와 무소속의 한 대행이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한다면 당심보다 민심을 선택하겠다는 것이고, 정당이 굉장히 무능하다는 것”이라며 “좋게 말하면 당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혁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왼쪽 셋째)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넷째)와 기념촬영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韓대행 띄우는 국힘 속내

반면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중도층에서 한덕수 대행이 김문수 후보보다는 표가 더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겠지만 1+1이 2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김 후보를 지지했던 강성 지지층의 표가 한 대행에게 가겠느냐”고 말했다. 김 후보와 한 대행의 단일화가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화학적 결합’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 한덕수를 띄울수록 경선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이 경쟁력이 없어서 한 대행을 내보낸다는 이미지가 박혀버린다. 당내 경선은 일종의 상한 음식만 많은 뷔페인 것이다. 한덕수는 그럼 먹을 수 있나 하고 포장지를 깠을 때도 상한 음식일 수 있다. 한덕수 띄우기는 국민의힘의 시선이 대선 승리가 아닌 당내 이권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차피 질 싸움이기 때문에 잘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서 지지층을 계속 끌고 가려는 기회로 삼을 뿐이다.”

2002년 대선 때의 단일화가 승리로 이어진 배경 중 하나로 ‘의외성’이 꼽힌다. 단일화가 어려울 것 같은 두 사람이 대선을 24일 앞두고 극적으로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유권자에게 충격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문수 후보와 한 대행이 단일화하는 것은 너무 뻔한 그림이라는 비판도 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옆집에 살던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자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며 “차라리 ‘한동훈·한덕수의 단일화’ 모델이 낫다”고 꼬집었다.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정몽준 후보는 월드컵 4강 진출로 지지세를 얻었고, 노무현 후보는 정치 개혁, 지역주의 타파 등을 내세우는 신선한 인물이었다. 단일화를 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는 탄핵에 반대했다. 한 대행은 총리길을 던져서라도 계엄 선포를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계엄 방조자 프레임에 걸릴 수 있다. 이 둘이 단일화를 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조기대선임을 감안하더라도 시기적으로 한덕수 띄우기가 너무 빨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덕수 카드를 너무 이르게 노출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대행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5월 3일 이후에 나올 것”이라며 “시기적으로 충격을 줘야 하는데 (한 대행 출마론이) 경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오면서 오히려 당내 경선 흥행을 막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민주당이 ‘내란 옹호 세력 대 민주주의 수호 세력’이라는 대결 구도를 만드는 상황에서 친윤계가 한 대행을 띄우는 것은 한 대행 입장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며 “한 대행은 탄핵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대행이 친윤계의 지지를 받는 것 자체로 ‘탄핵 반대 세력’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신 교수는 국민의힘에서 누가 후보로 나오든 이재명 후보를 이기긴 어렵다고 봤다.

“친윤계 지지는 마이너스”

박수영 의원에 따르면 한 대행의 출마를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은 54명이다. 전체 국민의힘 의원이 108명이니 지도부를 제외한 당내 과반 이상의 의원이 한 대행이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한덕수 대망론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한덕수 띄우기는) 당내 경선을 희화화하는 것”이라며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선 ‘게임을 그렇게 불공정하게 해도 되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한 대행 대선 출마를 둘러싼 당 지도부의 고심도 깊은 것으로 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대행의 대선 출마가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에 “경쟁력 있는 후보가 우리 당의 경선에 많이 참여하는 것은 컨벤션효과도 높이고, 국민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돼 나쁘지 않다.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4월 15일에는 “추가적인 출마설 언급은 국민의힘 경선 흥행은 물론 권한대행으로서의 중요 업무 수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당내에선) 한 대행이 무소속 출마를 한다면 어떤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화를 수월하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며 “김문수·나경원 캠프 쪽은 단일화 가능성이 높고, 한동훈·홍준표 캠프는 (단일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누가 최종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중동 유지한 채 강점 살린 행보

다만 한 대행이 출마 결심을 해야 단일화 시나리오는 실현될 수 있다. 출마 혹은 불출마 중 한 대행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었는지가 변수다. 한 대통령실 출신 국민의힘 의원은 “한 대행이 민주당이 국정 운영에 있어 함부로 못 건드리도록 출마론에 선을 명확하게 긋지 않는 것”이라며 “내가 아는 한 대행이라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한 대행 출마를 촉구하는 박수영 의원은 “출마 가능성이 65%”라며 지지율이 오른다면 출마를 결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후보는 오는 5월 3일 확정된다. 대선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은 선거 30일 전인 5월 4일이다.

일단 한 대행은 출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는 행보를 통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 대행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제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대행은 이틀 동안 한·미 통상 협상의 핵심 산업 현장을 찾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호남 출신인 한 대행이 대선에서 지역 민심을 가르는 호남과 영남을 번갈아 방문한 것을 두고 사실상 대선주자로서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4월 16일 울산의 HD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찾은 한 대행은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한·미 간 조선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최근 미국의 새로운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가 충격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하며 우리 산업이 받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광주 기아 오토랜드를 방문해 관세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산업 현장을 살피고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한 대행 측은 “대통령 파면 후 권한대행이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한 대행은 이날 광주 동구 대인시장에 위치한 ‘1000원 백반집’에 사비로 후원하고 감사 손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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