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다음 달 1일 발의하겠다고 29일 밝혔다. 민주당이 판사 탄핵 절차에 들어가자 현직 판사들은 “법원을 길들이기 위한 정치적 탄핵 아니냐”고 반발했다.

이날 법원 안에선 “여당의 탄핵 추진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부장판사는 “탄핵안이 가결돼도 이후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시작할 무렵이면 임 부장판사는 퇴직한다”며 “결국 법원을 망신 주고 길들이기 위한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판사들 사이에선 “앞으로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내쫓는 수단으로 탄핵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음 달 1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국회법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2일 본회의 보고를 거쳐 3일이나 4일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크다. 174석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만 참여해 찬성표를 던져도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다.

이른바 ‘사법 농단’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관련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다음 달 퇴직할 예정이다. 이날 서울고법에서 열린 사법 농단 관련 다른 항소심 재판에서도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당은 “임 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에 위헌(違憲) 행위를 했다고 나온다”고 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바람몰이식의 졸속 탄핵 의결을 하는 것은 절차상 타당하지 않다”며 “탄핵소추 사유로 들고 있는 ‘위헌적 행위’ 여부는 1심 판결 이유의 일부에 불과하고, 이 부분만 거두절미해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1심의 무죄 취지와 배치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치졸한 사법 장악 시도”라고 했다.

巨與의 ‘법원 포비아’… 탄핵으로 불만 터뜨려

더불어민주당은 29일 ‘판사 탄핵’ 추진에 대해 “탄핵은 헌법을 위한 것이고, 위헌(違憲)을 저지른 판사를 그대로 두는 건 국회의 직무 유기”라고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조차 “그동안 법원에 쌓인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린 것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윤석열 검찰총장 사건 등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잇따르자 ‘법원 포비아(공포)’를 호소해왔다. 28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조 전 장관 아들 허위 인턴 증명서 발급 혐의로 1심 유죄 선고를 받은 날 민주당은 법관 탄핵을 공식화했다. ‘법원 포비아’를 떨어내기 위해 ‘법원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 판결에 불만 쏟아냈던 민주당

민주당은 이날 판사 탄핵에 나서는 책임은 전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판사들을 스스로 걸러내지 못한 법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법 농단 1심 재판에서 위헌적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으니, 국회의 탄핵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설훈 의원은 “지금까지 한 번도 판사를 탄핵한 사례가 없어서 판사들이 법과 헌법에 위반돼도 그냥 지나간다”며 “국민이 180석을 준 건 이런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탄핵안 대표 발의에 나선 이탄희 의원은 “임 부장판사는 법원도 판결을 통해 ‘재판 독립을 침해한 반헌법 행위자’로 공인한 사람”이라며 “형사 재판으로 해결 안 되니 헌법재판(탄핵소추)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장경태 의원은 “사법 농단에 대한 단죄는 촛불 혁명의 약속”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며 각종 법안·현안 처리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지만, 법원으로 넘어간 주요 사안에서는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지사는 1심에 이어 작년 11월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권 전체가 방어전에 나섰던 ‘조국 사태’도 작년 12월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조치가 작년 12월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을 때는 이낙연 대표가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 지배를 받고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했다. 법원 판단이 나올 때마다 정부·여당을 향한 여론까지 악화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법원 포비아'가 생길 지경”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법원에 대한 분노·불만이 이번에 판사 탄핵으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탄핵 대상이 된 임성근 부장판사는 2월 퇴직이 예정돼 있어 실효성·망신 주기 논란이 있지만,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는 “퇴직과 관계없이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임 판사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법 농단에 연루되고도 아직 법원에 남아있는 판사들이 수두룩하다”며 “이들에게 재판을 맡겨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민주당 계획대로 1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면 국회법에 따라 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탄핵안 보고가 이뤄진다. 탄핵안은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하도록 규정돼 있어서 3일 또는 4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탄핵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에 회부해 조사하도록 할 수도 있지만 민주당은 “법원 판결로 모든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추가 조사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탄핵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151명)가 찬성하면 의결되고, 의결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로 보내진다.

탄핵안 표결이 무기명 투표여서 이번 탄핵안 발의에 ‘신중론’을 주장했던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론(黨論) 채택은 하지 않았지만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의 용인으로 사실상 당론화된 분위기”라며 “부결되면 당에 타격이 큰 만큼 마지막까지 표 관리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