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 연설을 ‘보이콧’했다. 시정연설에 앞서 대통령, 국회의장단, 여야 대표단이 함께 하는 사전 차담회 역시 거부했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로, 정치권에선 “대화마저 거부하면서 협치가 실종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민주당의 결정은 5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시정 연설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두 차례 여야 대표들과의 청와대 회동을 했지만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모두 불참하면서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지난 2017년 6월 문 대통령의 추경 국회 연설에 앞선 차담회에 불참했다.
하지만 홍준표 당시 대표는 2017년 11월 예산안 국회 시정 연설을 위해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전 간담회에는 참석했다. 문 전 대통령이 홍 대표에게 “오늘은 오셨네요”라고 인사하자 홍 대표는 “여기는 국회니까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내년 예산안과 입법안에 대한 여야 온도 차이가 컸지만, 대통령의 시정 연설, 사전 차담회에 대해선 협치 자세를 보인 셈이다. 한국당 정우택 당시 원내대표는 문 전 대통령에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다”면서 “경제 곳간은 분명한 재원 대책을 갖고 풀어야 하지만, 정치 곳간은 옥죄지 말고 많이 베풀어야 정치가 여유로워지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정 연설 때 검은색 옷에 ‘근조(謹弔)’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섰을 땐 한국당 의원들이 대형 현수막 3장을 펼쳤기도 했다. “북핵 규탄 UN 결의안 기권 밝혀라” “北 나포 어선 7일간 행적 밝혀라” “공영방송 장악 음모 밝혀라”는 내용이었다. 시정 연설 불참으로 대화를 전면 거부하기보다는, 참석으로 항의 뜻을 밝힌 것이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지만, 보이콧을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을 항의하는 시위로 맞섰다. 이날 오전 9시30분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도착에 앞서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 모였다. 이들의 손에는 ‘국회무시 사과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 ‘“이xx” 사과하라!’ 등 손팻말이 있었다. 이재명 대표도 ‘야당탄압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민생탄압 야당탄압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국회 모욕 막말 욕설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 구호도 외쳤다. 민주당 의원들은 애초 윤 대통령이 도착하면 침묵시위를 벌이기로 했지만, 곳곳에서 “사과하세요”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을 맞아 환담실로 이동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구호를 제창하면서 시위를 이어 갔다.
대통령 시정연설은 보통 1년에 한 번, 대통령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한다. 예산 편성과 관련한 정부의 주요 정책, 국정 전반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국민 앞에 직접 밝히는 자리다. 하지만 민주당은 최근 검찰의 대장동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시정연설, 사전 차담회 거부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당은 비속어 논란 사과, 대장동 의혹 관련 특검 수용 등을 요구했으나 이에 대한 응답 없이 국회를 방문한 데 대해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강도높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정 연설 전날 검찰이 당사 압수수색을 한 것을 두고 ‘정치 탄압’으로 규정,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함께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5년 전과 상황이 매우 다르다. 지금은 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등 도저히 협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시정 연설 등을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