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총선 결과에 따른 위원장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뉴스1

4·10 총선이 여당의 패배로 끝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한 전 위원장을 비판해 온 홍준표 대구시장과 만찬을 한 가운데,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실이 제안한 오찬을 ‘건강상 이유’로 거절했다. 다음 날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는 글을 썼다. 여권 관계자는 “총선 초반 김건희 여사 명품백 대응을 놓고 정면충돌했다가 일시 봉합됐던 두 사람의 관계가 총선 책임론을 놓고 다시 멀어진 모양새”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오후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 전 위원장에게 22일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회동을 제안한 윤 대통령이 이와 별도로 한 전 위원장, 윤재옥 원내대표 등 여당 총선 지도부를 만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밝혀 날짜를 잡지 못했다. 한 전 위원장은 본지에 “연락을 받고 바로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그날은 어렵다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다시 날짜를 잡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이후 주로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위원장은 다음 날인 20일 오후 10시 50분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저의 패배이지 여러분의 패배가 아닙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했다. 이어 “누가 저에 대해 그렇게 해 준다면 잠깐은 유쾌하지 않더라도 결국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며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글·사진을 게시한 것은 2021년 이후 처음이다.

한 전 위원장의 글은 이날 오전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윤통(윤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고 한 데 대한 반박처럼 해석됐다. 동시에 윤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홍 시장을 불러 만찬을 했다. 홍 시장이 그 후로도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 됐다”며 비난을 이어가자,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 관계가 되돌릴 수 없게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선 윤 대통령이 총선 기간 자신을 비난했던 홍 시장과 만찬을 한 것 자체가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는 표현은 본인 노력에 대한 항변이자 윤 대통령에게 하는 조언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법무부 장관을 사임하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며 대통령실과 정면충돌했다. 지난 1월말 오찬 회동을 통해 풀리는 듯 보였던 양측 관계는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거취 등을 놓고 다시 악화되기도 했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한 전 위원장의 향후 거취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6월 말쯤 전당대회를 열어 새 당대표를 뽑을 계획이다. 한 전 위원장 주변에선 이번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이 20일 쓴 글에서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밝힌 것은 6월 당대표 경쟁에선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란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이 ‘공부 모임’이나 유튜브 채널 개설을 통해 정치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