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의는 역사 바퀴를 해방 이전으로 돌리는 패착.”(2023년 8월 16일)
“자유·민주 진영 일원으로 역할·책임을 한층 강화하겠다.”(2025년 1월 17일)
계엄·탄핵 사태 이후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외교·안보 관련 발언이 극적으로 변했다. 연일 미국에 감사를 표시하고, 과거 맹비난하던 ‘한미일 협력’도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민주 진영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모습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연상시킬 정도로 낯설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변신은 ‘유력 대선 후보 이재명’의 외교·안보관에 대한 동맹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17일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젠 국내 정치뿐 아니라 미국 등 우방국들까지 보며 정치를 해야 한다”며 “외교·안보 안정감을 보여주는 게 이 대표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라고 했다.
이 대표는 17일 당 회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감사한다”며 “한미 동맹은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2월 1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성명에서도 미국과 우방국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우리는 자유·민주 진영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달 초 미국 LA 산불 사태 때 “어려울 때 함께 걷는 것이 동맹”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공들여왔던 한·미·일 협력 체계에 대해서도 지난달 주한 미국·일본 대사를 잇따라 만나 “한미일 간 협력 관계도 계속될 것”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이는 과거의 이 대표 발언과 180도 다른 것이다. 그는 2021년 7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 “친일 세력들과 미 점령군의 합작”이라고 했고, 일본을 향해선 ‘적성국’이라고 해왔다. 2022년 10월 한·미·일 동해 연합 훈련에 대해선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와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등에서도 이 대표는 ‘반일몰이’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가시화됐다는 판단 아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친중’ ‘친북’ ‘친러’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총선 국면이던 작년 3월 “우리가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고 했고, 작년 1월엔 북한의 무력 도발 자제를 촉구하면서 “우리 북한의 김정일·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이 폄훼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엔 “초보 정치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한다”고 비난도 했다. 그러나 계엄·탄핵 국면 이후엔 이 같은 발언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대표의 민주당은 이날 외신 담당 대변인에 외국 변호사인 염승열씨를 임명하는 등 외신 챙기기에도 적극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리 국민은 물론 동맹국들이 이 대표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점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에 야당이 ‘윤 대통령이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집했다’는 것을 탄핵소추 사유로 든 것 등이 이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중국 견제·압박’에 올인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친중’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차원에서 트럼프 라인을 뚫으려는 물밑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방미단 중 한 명인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 여야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이 트럼프 행정부 라인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방미 중에 여야 의원들이 함께 미 의회 상하원 외교 라인을 만나고, 민주당 차원에선 방미 기간 동안 미 공화당 싱크탱크 인사들도 만나볼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