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경선서 연설하는 이재명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영남권 경선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을 반드시 이겨 한 명의 공직자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하겠다”고 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첫 지역 순회(충청권·영남권)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1위를 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말엔 호남권·수도권 등 나머지 지역 경선을 치른다. 민주당에선 이 후보가 과거 압도적인 득표율로 경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됐던 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도 근접하지 못한 득표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상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유력 대선 후보의 등장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19일 열린 충청권 경선에서 유효 투표 6만4730표 중 5만7057표를 얻어 88.15% 득표율을 기록했다. 20일 치른 영남권 경선에서는 유효 투표 7만3255표 중 6만6526표를 얻어 90.81% 득표율을 거뒀다. 충청권과 영남권 경선을 합산한 이 후보 득표율은 89.56%였다. 김동연 후보는 합산 5.27%로 2위, 김경수 후보는 5.17%로 3위를 했다.

이 후보가 충청·영남 지역 경선에서 기록한 득표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5대 대선 때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경선에서 기록한 78.04%,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18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에서 기록한 83.97%를 모두 앞선 수치다. 이 후보는 2022년 민주당 당대표 선거 때 자신이 기록한 득표율 77.77%, 2024년 당대표 선거 때 득표율 85.40%도 뛰어넘었다.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는 50.29% 득표율로 후보에 선출됐었다.

이재명(왼쪽부터), 김경수,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20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1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당 첫 지역 순회 경선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선 “소속 정당의 견제가 거의 사라진 역대 어떤 대선 후보보다 강력한 후보의 출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행정부뿐 아니라 170석 거대 여당이 주도하는 입법부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정권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李, 남은 경선도 몰표 불 보듯… “집권 땐 당내 견제 없는 권력 탄생”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 대선 경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 후보는 대선 경선을 치를 때마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득표력을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첫 대선 도전에 나선 2017년 민주당 경선에선 문재인 후보(57%), 안희정 후보(21.5%)에 이어 21.2% 득표율로 3위를 했다. 두 번째 도전에 나선 2021년 대선 경선에선 50.29% 득표율을 기록해, 이낙연 전 국무총리(득표율 39.14%)를 제치고 민주당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한 이 후보는 4년 만에 다시 나선 민주당 첫 지역 순회 경선에서 9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강력한 당 지배력을 지닌 유력 대선 후보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래픽=송윤혜

이 후보의 압도적인 득표율은 경선 시작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두 차례 당대표직을 연임하며 민주당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해왔다. 특히 작년 22대 총선 때는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친문·비명 인사들은 상당수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170석을 확보했고 ‘이재명 일극 체제’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 후보의 장악력이 강해진 정당으로 변모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동력은 이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권리당원들이고, 이들이 경선 선거인단에 그대로 참여하면서 “경선은 해보나 마나”란 말이 나왔다. 19~20일 이틀에 걸쳐 치른 민주당 충청권·영남권 순회 경선 결과는 이런 정치권의 예측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 후보는 19일 충청권 경선이 끝난 뒤 “과분한 지지에 감사한다”면서, 취재진이 승리 요인을 묻자 “국민과 당원 동지들이 어떤 이유로 저를 지지하는지에 대해서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집권하면 행정부와 입법부를 민주당이 주도하게 되는데 권력 절제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는 “아직 경선 중이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가 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20일 영남권 경선이 끝난 뒤에도 역대급 득표율과 관련해 “당원들의 많은 기대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만 했다.

20일 오후 울산 울주군 울산 전시컨벤션센터 A홀에서 더불어민주당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영남권 합동연설회가 열리고 있다./뉴시스

민주당은 이번 주말인 26일 호남권, 27일 수도권·강원·제주 지역 경선을 치른다. 합산 득표율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2위 후보 간에 결선 투표를 하지만 이 후보가 첫 순회 경선에서 89.6% 득표율을 기록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김동연·김경수 후보는 첫 지역 순회 경선에서 한 자릿수 득표율에 머물렀다. 19일 충청권 경선에서는 김동연 후보가 득표율 7.54%로 2위, 김경수 후보는 득표율 4.31%로 3위를 했다. 20일 영남권 경선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득표율 5.93%, 김동연 후보는 3.26% 득표율을 기록했다. 충청권에서는 2·3위 후보의 득표율 합이 11%를 넘었지만, 영남권에서는 두 후보의 득표율 합이 10%에 못 미쳤다. 김동연 후보는 현직 경기지사고, 김경수 후보는 ‘친문 세력의 적자(嫡子)’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이 후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비명계 세력은 사실상 소멸 상태라는 걸 보여준 경선 결과”라고 했다.

이 후보는 20일 울산에서 치른 영남권 지역 경선 연설에서 “이번 대선은 단지 5년 임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린 절체절명의 선택”이라며 “이재명을 선택해 주시면 건곤일척의 이번 대선을 반드시 이겨 한 명의 공직자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행정권과 입법권을 모두 손에 쥐고 강력한 ‘이재명표 국정 운영’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수당 정권이 운영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던 국정 과제는 상당수가 ‘거대 야당’ 민주당의 저지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170석을 가진 민주당에 대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주요 쟁점 법안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경선은 소속 당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등장 가능성을 알리는 예고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