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곧 동남아 국가 방문을 추진하는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한·중·일 정상회의로 방중(訪中)한 지 1년 만이자 코로나 사태 이후 첫 해외 방문이다. 방문국으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검토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동남아 3개국 순방 두 번째 국가인 미얀마 수도 네피도 국제공항에 도착, 환영나온 의장대 사이를 통과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첫 정상 방문지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빠르면 다음 달에 해외 방문이 성사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코로나 확산 상황에 따라 방문 시기나 대상국이 조정될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방문 검토 국가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이다.

정부는 이번 정상 방문을 통해 문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신남방 정책’을 업그레이드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지난해 초 동남아 순방을 한 문 대통령이 다시 이 지역을 찾는 것도 ‘신남방 정책 다지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최근 격화하는 미·중(美中) 갈등 상황을 고려, 동남아 시장 개척으로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최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한·미 우호를 강조한 BTS(방탄소년단)를 비난하고 이에 삼성 등 우리 기업이 ‘제2의 사드 보복’을 우려해 BTS 광고 상품을 쇼핑몰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드처럼 중국의 경제 보복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 등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7~18일 베트남을 방문해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강 장관은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 총리를 예방, ‘양국 연 교역액 1000억 달러 달성 노력’ 등 양국 교역량 증대 방안을 협의했다. 정부는 최근 베트남 석탄 화력발전소 사업에 참여한 데 이어, 내년 인도네시아 등 주요 동남아 국가가 발주하는 대형 에너지·건설 사업 수주도 기대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는 우리의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연계해 동남아 국가들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면서 “오는 22일에도 제4차 한·미 민관합동경제포럼을 개최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 동남아 방문에서 대북(對北) 메시지를 낼지도 주목된다. 1·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각각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에서 열렸던 만큼 이번 방문에서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 등을 재차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 두 번의 미·북 정상회담이 모두 동남아 국가에서 열린 만큼, 동남아 국가를 방문해 다시 한번 미북 대화를 강조할 수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유엔 연설과 같이 ‘북한 비핵화’ 언급 없이 ‘남북 협력’이나 ‘종전 선언’만 강조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미국 대선이나 최근의 북한 총격 사건에도 미·북 모두에 종전 선언을 설득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해외 방문은 코로나 상황에도 세계 각국 정상이 하나둘 순방길에 오르며 적극적으로 정상외교를 재가동하는 가운데 추진되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오는 18일부터 4일 일정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스가 총리는 이번 순방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베트남과 방위 장비 수출 협정을 체결하는 등 대중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스가 총리가 강제 징용 문제로 연말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불참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일본이 우세를 보였던 동남아를 무대로 한·일 정상 간 외교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