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7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원전 관련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월성 1호기 폐쇄 추진 상황 보고를 요구하고 계속 보고를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청와대가 조기 폐쇄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내용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청와대가 산업부에서 수시로 보고를 받으면서 사실상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정황이 담겼다. 청와대는 “청와대와 부처의 당연한 협의 과정”이라고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7년 12월 산업부 보고를 받고 “2018년 초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한다면 2년간 가동한 후 폐쇄하는 것도 문제없다”고 회신했다. 산업부는 2018년 3월 15일 한수원 사장의 경영 성과 협약서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행 등을 포함하는 내용의 ‘에너지 전환 후속 조치 추진 계획’을 채희봉(현 가스공사 사장)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게 보고했다. 나흘 뒤인 3월 19일엔 산업부와 한수원 간 회의가 열렸고, 산업부 측은 한수원에 “대통령비서실에서 6월 19일(고리 원전 1호기 정지) 1주년 행사와 관련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는 2018년 4월 2일 산업부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추진 방안과 향후 계획을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해달라”고 했다. 그 직후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즉시 가동 중단’ 방침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동시에 한수원에 전달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여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등을 산업부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산업부에 전달된 이런 청와대의 ‘기류’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서에 담았지만, 청와대의 지시나 영향력 행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감사가 정권 차원의 ‘탈원전 정책’에 미칠 정치적 후폭풍 등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2018년 6월) 전까지 추진 현황을 계속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 전 비서관은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에 관여했느냐’는 질의에 “당시 청와대에서 담당 업무를 했다”고만 답했다.

청와대의 구체적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 등이 빠지면서 청와대는 이날 감사원 발표와 관련해 “청와대 사안이 아니다”라며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진행 상황을 협의·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국정 수행”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