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駐美) 대사의 한·미 동맹 폄하 발언 논란, 중국의 BTS(방탄소년단) 6·25전쟁 발언 관련 비난, 일본의 베를린 소녀상 철거 로비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한·미 방위비 협상 결렬, 해소되지 않은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과의 징용·수출 규제 갈등 등 주요 외교 난제들이 미해결 상태로 표류하는 가운데, 외교 악재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정부가 한미동맹에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고 중국엔 할 말을 못 하는 대응이 반복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미 국무부는 12일(현지 시각) 이수혁 주미 대사가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데 대해 “한미동맹을 극도로 자랑스럽게 여긴다(extremely proud of)”라고 했다. 미 국무부가 동맹국 대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각국이 대미·대중 메시지 관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미 대사는 이들을 자극하는 돌출 발언으로 외교적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반면 정부는 6·25전쟁 70주년을 기린 BTS에 비난을 퍼부은 중국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13일 논란이 커지자 “한·중 국민 간 유대감 증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만 했다. 정부는 최근 일본이 파상적 로비를 통해 베를린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하고, 독일이 이를 받아들인 데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외교가에선 “한국 외교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말이 나왔다. 한·미 방위비 협상 교착, 일제 징용 배상 문제, 중국의 사드 보복 등 ‘미제 사건’으로 남은 주요 외교 현안들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파생되고, 새롭게 돌출하는 외교 악재들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 문제도 한·일 갈등이 제3국으로 번진 사례다. 정부는 일본과의 분쟁이 독일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상 지키기, 베를린 시민들이 나서 - 13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 앞에서 시민들이‘평화의 소녀상’철거 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의장국 자격으로 연내에 서울에서 개최하려 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도 일본의 문제 제기로 준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강제동원(징용) 문제에 대한 수용 가능한 한국 측의 조치가 없으면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한·일 갈등이 3국 정상회의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날로 격화하는 미·중 갈등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명확한 원칙과 전략을 밝히지 않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미·중 양측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최악의 수를 두고 있다”며 “특히 미국엔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신호를 주게 돼 두고두고 외교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12일(현지 시각) “쿼드(미·일·인도·호주 4자 외교안보 협의체)는 다른 나라에도 열려있다”며 한국의 쿼드 참여를 우회적으로 요청한 데 대해서도 “미국이 쿼드 참여를 공식 요청하지 않았다”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비건 부장관은 “쿼드는 구속된 의무가 아니라 공동의 관심에 의해 추동되는 파트너십”이라며 “쿼드는 배타적인 그룹화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최근 쿼드와 관련해 “특정 국가의 이익을 배제하는 그런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한 데 대해 비건 부장관이 “쿼드는 배타적이지 않다”고 반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