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차 독일에 출장중인 조태열(왼쪽 첫번째) 외교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각) 독일 뮌헨 코메르츠방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외교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한미 외교 장관은 15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양자 회담을 갖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견지하며 향후 대북 정책 수립·이행 과정에서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장관급 이상의 대면 접촉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는 관세 정책과 관련해서도 긴밀히 협의해 상호 이익이 되는 해법을 찾기로 합의했다. 같은 날 열린 한·미·일 외교 장관 회의에서 3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對中) 정책 기조를 반영해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이날 미국·일본·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 7국(G7) 외교 장관은 성명을 내고 “북한에 모든 핵무기, 기존 핵 프로그램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CVID)’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이날 40분간 진행된 양자 회담에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 경제 협력 등 각종 현안을 두루 논의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특히 루비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 정책과 관련해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관계를 맺겠다”며 미·북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한국 패싱’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탄핵 정국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한국이 뒷전으로 밀릴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이번 회담으로 일부 불식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루비오 “최상목 대행과 한미동맹 신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관련해 조 장관은 “상호 이익이 되는 해법을 모색하자”고 했고, 루비오 장관은 “(담당 부처에)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관세 문제는) 미 측도 현재 시작하고 검토하는 단계”라며 “(한미 간) 계속 협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양국 장관은 또 조선, 원자력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첨단 기술 등이 앞으로 한미 간 전략적 협력 과제라는 데 공감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정국에서도 한미 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자는 뜻도 재확인했다. 미 국무부는 보도 자료에서 “루비오 장관이 한국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한미 동맹의 강인함에 대한 신뢰를 재차 밝혔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에서 조 장관은 아직 성사되지 않은 한미 정상급 통화와 관련해 미 측에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미 회담 직후에는 한·미·일 외교 장관 회담도 개최됐다. 조 장관, 루비오 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공동성명에서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 참여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미·일 양국 성명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적은 있지만, 한국이 참여한 3국 공동성명에서 발표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트럼프 임기 중에 대만이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 또는 세계보건총회(WHA)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 참여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최근 홈페이지 대만 관련 자료를 업데이트하면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 성명에선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 지지’라고 표현됐지만, 이번엔 한국의 요청으로 ‘적절한’이 추가돼 톤을 낮췄다고 한다.

3국은 또 “남중국해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힘 또는 강압에 의한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이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유지되고, 국제법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핵 억제력 등 한·미·일 안보 협력 방안이 북핵을 비롯해 북·러 군사 협력과 관련돼 심도 있게 논의됐다”면서 “3국의 각급 소통을 외교뿐 아니라 경제 안보와 인공지능(AI), 양자,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우리 대외관계의 핵심축인 한미동맹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이루어져서 다행”이라면서 “특히 북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한미일 협력과 첨단기술협력을 추진키로 한 것은 큰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