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권모(32)씨는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구청장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최동민 후보를 찍었다. 시장·구청장을 다른 정당 후보에게 나눠서 기표하는 ‘지그재그 투표’에 나선 것이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인 권씨는 “대선을 망쳐놓고도 ‘맡겨놓은 표 내놓으라’는 식으로 나오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다”면서도 “국민의힘에 너무 힘이 쏠릴까 봐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권씨처럼 각 정당 후보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교차 투표 현상은 수도권에서 보다 두드러졌다. 2일 서울시 개표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은 득표율 59.1%로, 민주당 송영길(39.2%) 후보를 약 20%포인트 차로 크게 이겼다. 오 당선인은 서울 425개 행정동에서 빠짐없이 승리했다. 그런데 서울시 기초단체장(구청장) 선거에서는 전체 자치구 25곳 가운데 민주당 후보들이 8곳에서 승리했다. 이 8개 구(區) 유권자 상당수가 ‘시장 따로, 구청장 따로’ 식으로 투표했다는 의미다.

서울 성동구가 대표적이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정원오 구청장 당선인은 득표율 57.6%로 국민의힘 후보를 꺾었지만, 반대로 송영길 후보는 37.55% 득표율에 그치면서 패했다.

경기도에서도 표가 갈렸다. 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0.1%포인트 격차로 도지사에 당선됐지만, 시장·군수 선거에선 정반대로 국민의힘 후보들이 대거 승리한 것이다. 경기 지역 시군 총 31곳 가운데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된 지역은 22곳에 달한다.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텃밭’으로 분류되는 안양, 부천, 광명, 시흥시 등 9곳에서만 이겼다.

경기 남양주시에선 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49.83%의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시장 선거는 같은 당 최민희(득표율 46.55%)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했다.

통상 여러 장의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지방선거에선 ‘대장’ 격인 광역단체장 후보 선호도에 따라 기초단체장 후보까지 표심(票心)이 따라가는 ‘줄투표’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번 6·1 지방선거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표용지에 ‘기둥’을 세우기보단, 선거 종류에 따라 지그재그 식으로 기표하는 유권자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정당보다는 인물에 반응하는 유권자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후보가 마음에 든다면 지지하지 않는 정당 소속이더라도 찍는다는 것이다.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열세인 서울 동북권·서남권에 집중적으로 유세했고, 결과적으로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약자와의 동행’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중도층, 나아가 일부 민주당 지지자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현역 프리미엄’도 교차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다. 실제 민주당이 승리한 서울 구청장 8곳 가운데 7곳이 현역 구청장이 재도전한 지역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서울 전역에서 정권 안정론 바람이 불었지만, 개인기로 버틴 일부 민주당 현역 구청장이 연임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유권자들이 무조건적인 ‘줄투표’보다는 현역 기초단체장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거는 ‘바람’이라지만, 바람에 휩쓸리더라도 (현역 단체장) 본인이 잘했다면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