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24일 방송된 6·3 대선 첫 정강·정책 연설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사과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연설과 관련해 “내용에 대해선 사전 상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계엄·탄핵 사태에 대해 당 차원의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관계 정리를 하지 않고서는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의 집권을 저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런 인식에 공감하고 윤 원장을 연설자로 내세운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원장은 이날 KBS를 통해 방송된 연설에서 “지난 4년 정치는 점점 더 나빠졌다. 대통령 심기를 살피며 두 명의 당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렸고,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를 눌러 앉히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기까지 했다”면서 “(윤 전 대통령과 친윤계의) 그런 움직임을 추종했거나 말리지 못한 정치, 즉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결국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2022년 이준석 전 대표를 국민의힘 윤리위에 회부해 결국 탈당으로 몬 것, 2023년 대통령의 총선 불출마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김기현 전 대표가 중도 사퇴한 것, 2023년 나경원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불출마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윤 원장은 이런 일들이 벌어진 배경에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당대표를 낙마시키며 국민의힘을 주무른 윤 전 대통령과, 그의 심기를 살펴 당 운영과 관련한 패권적 행태를 대행하거나 방기한 친윤 그룹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윤 원장은 “당이 만만했기 때문에 대통령도 계엄 계획을 당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전에) 알았더라면, 당내 많은 이들이 용산으로 달려가 결사코 저지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2·3 계엄 직후 계엄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고 원론적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 “탄핵 사유가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이런 흐름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국민의힘은 중도층 유권자들로부터 “반성과 성찰이 없는 정당”이란 비판을 받았고 결국 헌재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이 인용되면서 국민의힘 진영은 정치적 파국을 맞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런 상태로는 40일 앞으로 다가온 조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보고 윤 원장이 강도 높은 대국민 사과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윤 원장은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도 “무엇을 이겼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에 남겨진 것은 깊은 좌절과 국민의 외면뿐”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차기 대통령은) 취임 첫날 당적을 버림으로써 1호 당원이 아닌 1호 국민임을 천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처럼 행세하며 당의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해 자율성을 훼손하는 폐습을 끊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윤 원장이 연설 주제로 국민의힘의 반성과 성찰을 다룬 취지에 동의한다”면서 “다만 연설 중 일부 주장이나 표현과 관련해서는 당의 공식 입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윤 원장은 지난 대선 캠페인 때부터 윤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왔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그런 윤 원장을 이번 대선 첫 정강·정책 연설자로 선정한 것은 그의 연설을 통해 “계엄·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메시지를 천명하려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 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저를 첫 연설자로 정한 걸 보면 이심전심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부 진통이 있더라도 이재명의 집권을 저지하려면 계엄과 탄핵, 윤석열이라는 강을 건너야 경선 후보들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이런 흐름이 윤 전 대통령의 자진 탈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탄핵은 재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으면 대선을 제대로 치르기 어렵다는 인식이 당원들 사이에서 점점 확산하는 분위기가 윤 원장 연설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