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최 대행은 이날 추경과 관련해 “추가 재정 투입은 국회·정부 국정 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국회와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20조원 규모 추경을 요구하고, 국민의힘도 추경 편성을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추경 편성보단 올해 예산 상반기 조기 집행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본격화한 내수 침체와 12·3 비상계엄 사태로 불거진 정치 불안정이 겹치면서 정부도 추경 검토로 선회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 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민생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경제계 등 일선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행은 그러면서 “국회·정부 국정 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 원칙하에서 국회와 정부가 (추가 재정 투입을)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내수 부진 등으로 경기 침체 국면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추경 편성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체감 경기는 나쁘지만 실제 경제 지표는 악화하지 않았고, 기대되는 경기 부양 효과에 비해 재정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의 이런 입장은 비상계엄 사태 후에도 한동안 바뀌지 않았다. 이달 초 기재부는 “정부는 국회에서 확정된 (기존) 예산을 신속히 집행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으며, 추경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달 취업자 수가 3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오고, 올해 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기 둔화 조짐이 커지자 정부 안팎에서 추경론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추경이 필요하다”라면서 “15조원에서 20조원 정도 (추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 시기는 가급적 빨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지난 총선 공약인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추진을 내걸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추경으로 마련하겠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을 주려면 약 13조원이 필요한데,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화폐 발행 예산 국고 지원금 등을 포함해 최소 20조원 규모의 추경을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장을 맡은 허영 의원은 “20조원을 기본 출발선으로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역 화폐 발행에 들어가는 예산을 중앙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역화폐법 개정안도 22일 발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의 ‘현금 살포’ 식 추경에는 반대하지만, 추경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추경 논의는 항상 열려 있고, 정부가 제안한다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그러면서도 “포퓰리즘 추경, 선거용 추경은 안 된다.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고 골목 경기를 살릴 수 있는 민생 추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여·야·정 국정 협의체 합의를 전제로 내수를 살리고 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한 추경 편성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추경 규모가 20조원이 넘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에는 부정적이다. 정부 내에선 1.6~1.7%로 전망되는 올해 성장률을 잠재 성장률 수준인 2.0%로 끌어올릴 정도로 이창용 총재가 제시한 15조~20조원 수준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추경을 통해 국민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자는 민주당 주장에는 반대 입장이다. 다만 지역 화폐를 구매한 주민들에게 10~20%의 할인 혜택을 주는 데 중앙정부 예산을 쓰자는 민주당 주장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작년말 민주당 주도의 4조원대 감액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지역 화폐 할인 지원 예산으로 4000억원을 제시하면서 예비비와 국채 이자 상환액 예산을 늘려달라고 민주당과 막판 협상에 나섰다가 불발됐었다. 정부는 도로·철도 등 SOC 분야 유지·보수 사업, AI(인공지능) 관련 사업, 경기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망 확충 사업 등 경기 회복에 필요한 재원 위주로 추경안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