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입시 학원과 유명 사교육 강사들에게 불법으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주고 돈을 받은 교사가 최소 249명에 달하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받은 것으로 확인된 금액은 212억90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8550만원을 챙겼다. 대다수는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 사실을 학교와 교육청에 알리지 않았고, 16명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까지 속이고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선정됐다. 문항 거래 관계에 있는 사교육 업체에 평가원 모의평가의 출제 의도를 유출한 교사도 적발됐다.
감사원이 18일 공개한 ‘교원 등의 사교육 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경기와 6개 광역시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가운데 2018~2022년 5년간 학원과 출판업체 등에서 돈을 5000만원 넘게 받은 교사가 295명이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접근할 수 있는 교과서나 참고서, 문제집 등을 집필해주고 원고료를 받은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사교육 업체와의 불법 문항 거래를 통해 돈을 번 경우였다.
불법 문항 거래는 주로 사교육 업체가 EBS 수능 연계 교재나 문제집의 집필진 명단을 보고 교사에게 연락해 계약을 제의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업체 측이 교사에게 출제 방향과 난이도를 지정해 출제 의뢰서를 전달하면, 교사가 이에 맞춰 문항을 만들어주고 대가를 받는 식이었다. 계약은 대부분 구두로 이뤄져 문서를 남기지 않았고, 단가는 일반 문항의 경우 10여만원, 고난도 문항은 20여만원이었다.
한번 문항 거래를 시작한 교사는 거래를 오랫동안 계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용인시의 고교 수학 교사는 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문항을 팔아 2억4300만원을 받았고, 서울 송파구의 영어 교사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문항을 팔아 7500만원을 받았다. 아예 특정 업체에만 문항을 공급한다는 ‘전속 계약’을 맺은 교사도 있었다. 서울 양천구 고교 국어 교사 2명은 각각 3300만원, 1700만원의 전속 계약금을 받고 특정 업체하고만 거래했다. 문항 판매 대금은 별도로 받았다. 업체로부터 일감을 너무 많이 받아왔다가 감당하지 못해 다른 교사에게 하청을 준 교사도 있었다. 서울 양천구 한 고교 수학 교사는 2019년 한 업체를 위해 모의고사 4회치 문항 120개를 만들어주기로 했다가 시간이 부족하자 서초구의 한 수학 교사에게 223만원을 주고 문항 30개 제작을 맡겼다.
사교육 업체들은 이런 교사들을 모아 ‘문항 제작팀’을 꾸렸고, 교사가 직접 문항 공급 조직을 만들어 다른 교사들을 끌어들인 뒤 사교육 업체들과 거래를 트기도 했다. 이번에 적발된 249명 가운데 115명(46.2%)은 문항 제작팀이나 교사 주도의 문항 공급 조직 소속이었다. 다른 교사를 섭외하거나 다른 교사들이 만들어온 문항을 검토하는 일을 하며 사교육 업체에서 다달이 월급을 받은 교사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고교 수학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대학 동기인 수학 강사를 위해 교재 제작 업무를 해주면서 연봉으로 3660만~4211만원씩 총 2억1000만원을 받았다.
대구 수성구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다른 교사 7명을 섭외해 문항 공급 조직을 꾸리고, 사교육 업체에서 일감을 따왔다. 이 교사는 사교육 업체에서 총 6억6100만원을 받았고, 이 가운데 5억원은 동료 교사들과 문항 납품 기여도에 따라 나눠 가졌다. 1억1600만원은 알선비 명목으로 추가로 챙겼다. 이 교사는 사교육 업체에서 2억1100만원은 아내와 처남 명의 계좌로 입금하게 해서 소득세도 탈루했다.
감사원은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 업체에 판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금품 수수를 금지한 청탁금지법을 어겼다고 봤다. 감사원은 또 불법 문항 거래가 학생 성적 평가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사교육 업체가 (교사들로부터 산) 문항을 활용해 강의를 제공하거나 교재를 판매하면, 이를 구입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에 비해 수능이나 내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사교육 업체에서 교습하는 문항이나 이와 비슷한 유형이 수능이나 내신 시험에 출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야기하는 결과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그러면서 “공교육 종사자로서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교원이 오히려 공교육의 신뢰성을 저해하고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등 교원으로서의 직무 수행의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가 초래된다”고 했다.
실제로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판 교사 상당수는 자신이 판 문항을 자기 학교 내신 시험에 그대로 출제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영어 교사와 윤리 교사, 양천구의 한 국어 교사는 각각 사교육 업체에 판 문항 가운데 13개, 13개, 14개 문항을 자기 학교 중간·기말고사에 그대로 또는 일부 변형해서 출제했다.
교사 16명은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팔면서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 요원으로 선발돼 출제에 참여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위원을 위촉하기 전에 후보자가 최근 3년간 수험서를 집필해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는지를 확인해 그런 후보자를 배제하는데, 16명은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 사실을 숨기고 출제위원 선발에 응한 것이다. 서울 한 사립고 국어 교사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4개 업체에 문항을 팔아 6130만원을 챙겼는데, 그러면서도 2018학년도 수능과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수능,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2023학년도 수능 출제에 참여했다. 서울 한 사립고 물리 교사도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사교육 업체 5곳에 문항을 납품해 1억1175만원을 받으면서 2023학년도 6월 모의평가를 출제했다.
서울 노원구 한 고교 영어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EBS 수능 연계 교재를 집필하고, 2010학년도부터 2022학년도까지 수능과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10차례 참여하면서,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를 같이하면서 6956만원을 챙겼다. 이 교사는 2021년 9월에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가 시행되자, 업체로부터 ‘영어 37번 문항의 출제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평가원이 무슨 논리로 정답을 도출한 것인가’라는 문의를 받았다. 그러자 평가원 관계자에게 연락해 출제 의도를 물어 답을 들은 뒤 이를 업체에 전달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통해 적발한 불법 문항 거래 교사 249명 가운데 41명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소관 교육청, 사립학교법인에 알려 징계하도록 하고, 나머지 208명에 대해서는 교육부에 비위 유형과 경중을 고려해 적정하게 조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 이 감사의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교사 27명과 사교육 업체 관계자 23명 등 56명을 업무 방해와 배임 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
한편 감사 결과가 공개되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대응 의지 속에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킬러 문항’(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초고난도 문항)과 사교육 이권 카르텔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6월 교육부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고 하는 것”이라며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했다. 이때부터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조사와 수능에서의 킬러 문항 배제가 추진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가장 공정해야 할 대입 수능부터 바로잡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개혁의 우선 과제”라며 “이번 감사는 그 출발점에 불과하고, 더 끈질긴 개혁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