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4월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정부가 지속적으로 조작한 주간 집값 상승률 통계가 KB국민은행이 매주 발표하는 집값 통계와 비교되면서 조작 의혹을 받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KB 통계를 없애버리거나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이 17일 공개한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문 정부는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1회 조사해 발표하는 ‘전국 주택 가격 동향 조사’ 통계를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3년 10개월간 최소 102차례 조작했다. 이 통계는 전국의 아파트 등 주택 가격이 1주 전에 비해 얼마나 상승 또는 하락했는지를 조사해 공표되는 것이다. 문 정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부동산원의 조사 결과를 공표되기 전에 미리 받아보고, 집값 상승률이 너무 높다고 생각될 때마다 부동산원을 압박해 집값 상승률 통계를 낮추게 했다.

문제는 KB국민은행도 매주 집값 변동률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원 통계는 KB 통계와 계속 비교됐다. 예를 들어, 2020년 8월 넷째 주부터 10월 넷째 주까지 10주간 부동산원은 서울 아파트값이 매주 전주에 비해 0.01%씩만 올랐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와 국토부의 조작 지시로 만들어낸 숫자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KB 통계상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222~0.382%로 최대 38배까지 차이가 났다.

국회와 언론, 시민단체는 2018년부터 부동산원 통계와 KB 통계를 비교하며 부동산원 통계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2020년 7월에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문 정부 출범 후 그때까지 3년 2개월간 서울 아파트 값이 부동산원 통계 기준으로 단 11%만 올랐다고 발언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동산원 통계에 대한 신뢰성 의혹 제기는 2020년 10월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이 국정감사는 문 전 대통령이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감사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원 통계 신뢰성 논란을 보고 “대노”했고, 신뢰성 논란에 대한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청와대 주택도시비서관실과 국토부를 거쳐 부동산원까지 전달됐다. 감사원은 부동산원 직원이 원장에게 “(국토부) A과장 요청 사항이 있어 보고드립니다. 오늘 국토부 국감을 보시고 VIP(문 전 대통령)께서 대노하시면서 지시하였다고 합니다”라며 문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한 모바일 메신저 대화 기록을 확보했다.

기록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원 주택 동향(통계)과 KB 동향(통계)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부동산원 통계를 통제하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KB 통계를 통폐합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원) 주택 동향(통계)의 표본 수를 10만 개까지 늘려서라도 압도적으로 민간 통계를 누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했다. 부동산원 통계의 표본 수를 크게 늘려서 부동산원 통계가 KB 통계보다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게 하라는 것이었다.

문 전 대통령 지시를 하달받은 국토부는 자신들이 부동산원 통계를 조작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감추고 ‘민간 통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담은 ‘주택 통계 개선 방안’이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문서에서 국토부는 “민간 통계는 통계법에 따른 품질 진단 등 엄격한 프로세스에 따른 관리가 미흡하다” “민간 통계는 활용 단계에서 자율적·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간 통계에 대한 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인증 기준을 어겼을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자고 했다.

국토부의 이런 ‘KB 통계 제재’ 방안은 청와대로 올라갔고, 문 전 대통령은 10월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의 회의에서 다시 “신뢰성·대표성에 문제가 있는 민간 통계에 대한 ‘협조’ 필요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대통령의 추가 지시를 받은 국토부는 ‘대통령 지시 사항 이행 계획’이라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계획서에는 ‘주택통계혁신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KB 통계 등 민간 통계에 대한 ‘자율 규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 들어갔다. KB 통계가 폐지되도록 유도하되, 국토부가 나서면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논란이 일 수 있으므로 부동산원을 전면에 내세우자는 내용도 있었다.

문 정부의 KB 통계 제재·폐지 계획은 최종적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감사원은 문 정부가 이 계획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민간 통계를 정부가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 등이 나와서 문 정부가 이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봤다. 다만 KB국민은행은 실제로 2020년 10월 주간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가 ‘정부 외압’ 논란이 일자 발표를 재개한 바 있다. 당시 국토부는 “KB의 (통계 발표 중단) 의사 결정과 관련해 정부는 KB와 어떠한 사전 접촉 또는 협의도 진행한 바 없다”고 주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