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86년 김일성 주석이 내놓은 급진 노선인 ‘사회주의완전승리론’을 하향 수정한 ‘사회주의강국론’을 제시했다.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하는 ‘철학·사회정치학연구’2020년 2호(6월 15일 발행)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렸다. 이 잡지에 실린 ‘사회주의강국건설은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위한 투쟁의 력사적단계’라는 제목의 글에 따르면 북한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은 ‘사회주의완전승리’로 가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역사적 단계”라고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주의강국론은 북한이 36년 전 공산주의 문턱에로 단번 도약을 노렸던 ‘사회주의완전승리’의 급진노선에서 벗어나 과도기 발전 단계를 설정한 것으로 분석했다. 과거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사회주의초급론’을 모방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년 1월 열리는 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사회주의강국론을 통해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경제목표를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저자는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이룩하자면 그것을 담보하는 기초가 있어야 하며 그 기초는 바로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통하여 마련된다”고 했다. 또 “정치군사적기초와 경제기술적 기초를 마련해 사회주의강국을 (먼저)세워야 소유관계를 국가적소유로 전환하고, 무계급 사회를 이루는 완전승리로 갈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과거 북한이 1980년대 스스로의 발전단계를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향한 단계로 설정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난다. 김일성은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현 시기 당면한 투쟁 과업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는 것”이라며 “완전히 승리한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가 끝나고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가 완전히 실현된 사회”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내놓은 사회주의완전승리론과 이에 근거한 사회발전구상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내세우며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의 노선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생산력의 저발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자기 사회의 발전 단계를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규정했다. 또 서방의 선진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구사했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1986년 12월 제6차 당대회를 열어 베트남의 경제 수준을 ‘사회주의 과도기 초기 단계’로 진단했다. ‘진실을 바로 들여다보고 진실에 기초한 평가를 하며 진실을 말하자’는 취지에 입각한 평가였다. 이후 베트남은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노선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반면 김일성은 1987년 북한 경제 간부들에게 “최근 일부 사회주의 국가가 수정주의, 개량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다”며 베트남과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외화가 부족하지만)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얻어 쓰는 것은 스스로 예속의 올가미를 쓰는 것과 같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1987년부터 시작된 3차 7개년 계획을 통해 사회주의 완전 승리 실현이 가능하다며 추진했지만 1992년에 결국 계획의 실패를 자인했고, 북한은1995년부터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고위급탈북민A씨는 “김정은이 북한의 엄혹한 경제현실을 인정하고, 불가능한 단번 도약이 아니라 과도기 단계를 설정한 것”이라며 “2016년 5월 노동당 7차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실패도 노선 수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8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6차 전원회의에서 올해까지 달성하기로 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됐던 국가경제의 장성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8차 당 대회에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도 노동당 8차대회에서 ‘사회주의강국건설론’을 통해 경제목표를 하향 조정한 새 5개년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국책연국소 관계자는 “대북제재와 코로나에 이어 수해와 태풍까지 겹치면서 올해 북한 경제는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며 “내부자원을 최대한 끌어내 버티는 생존과 체제유지에 중점을 둔 경제목표가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