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 열차 내부에서 한국에 출시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상위 브랜드 마이바흐 차량이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일 김정은이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현장을 재차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공개했다. 수해 현장에서 김정은은 전용 열차 한 칸의 문을 양옆으로 완전히 개방한 채 이곳을 무대 삼아 수재민들 앞에서 연설했다.
당시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전용 열차 내부 연설 단상이 마련된 곳 바로 오른쪽에 벤츠 로고가 달린 검은색 SUV가 놓여 있다. 번호판에는 ‘7 27 1953′이라는 숫자가 적혔다. 북한이 6·25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싸워 이겼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전승절’로 기념하는 날짜다. 이 차는 한국에서 올해 4월 판매를 시작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GLS 600 4MATIC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추정된다. 국내 가격은 2억7900만원에서 시작한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1월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에서도 마이바흐를 타고 등장했다. 당시 모델은 마이바흐 GLS 600였는데, 그 사이 새로운 SUV를 손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고급 외제차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 전국 어머니 대회에 참석할 때는 2019년 이후 판매가 시작된 마이바흐의 신형 세단인 S650에 탑승했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엔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리무진을 이용했다. 또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 방북 땐 롤스로이스 팬텀의 방탄 차량을, 2020년 8월에는 수해 현장을 방문하면서 렉서스 LX570으로 추정되는 SUV 차량을 각각 탔다.
벤츠 등 고급 차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수출 금지 대상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2094호는 고급 자동차와 보석제품, 경주용 차량 등을 대북 수출 금지 품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을 비롯해 북한 고위 간부들이 벤츠를 이용하는 모습이 지속해서 노출되면서, 대북 제재 감시망에 틈새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김정은은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환영식에서 벤츠를 타고 이동했다. 두 사람은 차량 지붕을 열고 나란히 선 채로 광장을 돌며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대북 제재 대상인데도 북한에서 지속적으로 벤츠가 포착되는 것과 관련, 벤츠 측은 BBC에 보낸 성명에서 “대표부는 물론 다른 어떤 시설을 통해서도 북한과는 전혀 거래하지 않으며 북한 시장에 진출해 있지도 않다”며 “제삼자에 의한 차량 판매, 특히 중고 차량의 판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2020년 연례보고서에서 김정은이 사용하는 마이바흐 S600 리무진 2대가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 6국을 거쳐 평양에 밀반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내린 폭우로 압록강 하류에 있는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에서 4100여세대와 농경지 3000정보를 비롯해 공공건물과 시설물, 도로, 철길이 침수됐다.
구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인명피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당국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TV조선에 “이번 폭우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적게는 1100명에서 최대 1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직접 피해 뿐 아니라 무리한 조업으로 사망한 구조대원 숫자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