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가 집결해 있는 전략미사일 기지 내부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 기지 내부 사진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 시설 공개에 이어 또 다른 자국 군사 기밀인 미사일 기지를 스스로 노출한 셈이다. 미국 대선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자신들의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파병설 제기 이후 강화될 대북 압박을 견제하는 등 다목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략미사일 기지를 시찰하면서 “전쟁 억제력 제고 및 핵 무력의 철저한 대응 태세를 엄격히 갖출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미사일 기지를 시찰하고 발사 관련 시설 요소별 기능과 능력, 근무 상태 등 유사시 가동 준비 태세를 점검했다. 시찰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북한 미사일 개발의 주역으로 불리는 김정식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수행했다.
북한은 이날 관련 사진 5장을 공개했다. 2장은 김정은이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려 있는 고체 연료 ICBM 화성-18형과 글라이더 활공체 기반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둘러보는 사진이다. 화성-18형은 사거리 1만5000㎞가 넘어 정상 각도로 발사 시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다. 사거리 3500~4000㎞의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은 괌을 겨냥한 무기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마크가 찍힌 검은색 가죽 재킷차림으로 간부들을 이끌고 수풀이 우거진 좁은 숲길을 헤치며 걷는 모습이었다. 흰 터널과 같은 형태의 시설 내부도 나온다. 전략미사일 기지가 은폐된 지하 터널형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숲길에서 손가락으로 땅 밑을 가리키며 보고를 받는가 하면 내부 터널로 보이는 곳에서 뭔가를 지시하는 장면도 사진에 포함돼 있다. 김정은은 “전략미사일 기지들을 더욱 현대화·요새화할 것”과 “임의의 시각에 적수들에게 전략적 반타격(반격)을 가할 수 있게 철저한 대응 태세를 유지하라”고 했다.
북한 매체나 김정은이 ‘전략미사일 기지’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실제 장소를 일부라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대선을 2주 앞두고 있고,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개한 직후라는 점에서 북한의 이 같은 행보에는 여러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파병을 통해 ‘혈맹’으로 부각된 러시아로부터 ICBM 대기권 재진입과 다탄두 기술 등을 이전받을 수 있다고 미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것이다. ICBM 기술의 완성은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또 미국 대선 전 언제든 ICBM 발사 등 도발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실제 핵실험이나 ICBM 발사보다는 ‘보여주기’로 수위를 조절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병으로 인해 조성될 긴장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가 자칫 북한이 파병으로 전력 공백 또는 군사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보고 대북 위협·공격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나토, 한국에 자신들의 핵 능력을 환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