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에 이어 다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방문하고 핵 능력 고도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비핵화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미국에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대화를 하게 되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정상외교 재개 시사 발언에 대해서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29일 김정은의 핵 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 방문 사실과 관련 사진 9장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핵 대응 태세를 한계를 모르게 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확고한 정치군사적 입장”이라며 “지금의 앙양된 기세를 더욱 고조시켜 무기급 핵 물질 생산계획을 초과 수행하고 나라의 핵 방패를 강화하는 데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하여야 한다”고 했다.
보안이 생명인 핵시설 내부 사진을 공개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을 향해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는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 상태에 진입해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접근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우라늄 원심분리기 높이는 김정은 키보다 약간 낮았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의 원심분리기는 길이 170cm 정도로 이란의 IR2m, IR4 또는 IR6와 유사해 보인다”며 “사진으로만 봐도 원심분리기가 2000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만 해도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북한의 핵무장에 충분하다”고 했다.
김정은은 올해가 “핵 무력 노선을 관철해나가는 과정에서 중대 분수령이 되는 관건적인 해”라고도 해 당분간 대미 비핵화 협상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다만 그가 “가장 간악한 적대국들과의 장기적인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하면서도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향후 협상을 대비해 비판의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은 영변 핵 시설 해체와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제안을 했으나 트럼프는 ‘영변 이외 5곳’의 핵 시설 리스트를 내밀며 비핵화 협상은 ‘노딜’로 끝났다. 김정은은 ‘하노이 노딜’ 이후 2019년 4월과 작년 6월 우크라니아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뒤 대규모 인원의 러시아 파병 등 러·북 군사적 밀착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