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4일 부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회사 주식을 3억원어치 갖고 있으면 대주주로 간주해 이 주식을 팔 때 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방안이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반대로 무산된 것에 대해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은 추가경정예산 규모 확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 확대 등 주요 사안에서 번번이 총선 등 ‘정치적 이유’를 내세운 여당과 청와대에 밀려 경제 부처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한 데 대한 항의였다는 해석이 많았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만류와 여당의 “무책임하다”는 비난에 하루 만에 사의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반려하는 과정에 대해 청와대와 다른 설명을 내놓고, 대주주 요건과 관련해서도 기존 입장을 다시 언급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고개 숙인 洪부총리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2021년도 예산안 제안 설명을 위해 발언대로 향하며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홍 부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출석해 “(사의를 반려한다는) 인사권자의 뜻이 발표됐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인사권자의 뜻에 맞추어 부총리로서의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전날에는 자신의 사의 표명을 문 대통령이 곧바로 반려했다는 청와대의 발표에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후임 경제부총리가 취임할 때까지만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했었으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예결특위 국민의힘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사의 반려를 수용하고 계속 일하겠다면 정말 무책임한 태도"라며 "국민은 엉성한 각본에 의한 ‘정치 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는 “대주주 요건을 현행대로 (10억원 이상으로) 유지하게 되면서 기재부와 제가 (3억원 이상으로 하향) 쭉 얘기해온 내용과 다르게 말씀을 드리게 돼 물러나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진심을 담아 사의 표명을 한 것인데 ‘정치 쇼’라고 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권에서도 홍 부총리에 대한 질타가 계속됐다. 예결특위 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결정된 것을 책임 있게 집행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태도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당과 정부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큰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장관들도 당도 합의가 이뤄졌으면 승복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도 국회에서 청와대·여당과 이견을 드러냈다. 그는 “부총리의 생각은 대주주 요건을 ‘3억원 이상’으로 바꾸는 것과 현행대로 ’10억원 이상'으로 두는 것 중 어느 쪽이냐”는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의 물음에 “지금은 조율이 됐기 때문에 ’10억원'이라고 말씀드렸다”면서도 “정부로서는 공평 과세 차원에서 바꾸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했다”고 했다. 또 청와대는 전날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사의를 바로 반려하고 재신임했다”고 했지만, 홍 부총리는 이날도 “반려 소식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오후 2시 50분 정도에 메모를 받고 알았다”고 했다.

기재부 내에서는 “그간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나 부동산 관련 세금 세율 인상 수준 등을 결정할 때마다 여당에 압박당했던 부총리가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번번이 여당에 끌려가다가 지금에서야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홍 부총리는 이날 예결특위 오후 회의에도 불참했다. 지난달 26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빈소를 조문했는데, 그날 빈소를 방문한 기자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데 따른 것이었다. 홍 부총리를 비롯해 이날 국회에 출석했던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등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택 대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