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의 ‘3%룰’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사실상 반대 입장을 국회에 밝힌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3%룰’은 기업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상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에 ‘3%룰’ 도입과 관련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법무부는 지난 8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감사위원의 선임·해임 시 대주주가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최대 3%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담았다. 이와 함께 감사위원은 원천적으로 다른 이사진과 분리해서 뽑도록 하는 ‘분리 선출제’도 도입했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이사들을 먼저 선임한 후 그중에서 감사위원을 뽑게 돼 있다. 또 이사 선임 때는 대주주 의결권에 제한이 없고, 감사위원 선출 때만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주주 권한이 지금보다 크게 제한돼 재계에서는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3%룰’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주주권(株主權)의 본질에 반하여 ‘주식 평등의 원칙’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국회에 전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방안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 선임을 강제하면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까지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룰에 대해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고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주 권리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조수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법원행정처가 반대할 정도라면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법원행정처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 역량을 높이겠다며 국민의힘 권성동·추경호·김용판 의원이 발의한 ‘포이즌 필(poison pill·신주 인수 선택권)’ 도입 법안에 대해서는 “적대적 M&A(인수·합병)의 역기능 억제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포이즌 필’은 비상시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 지분을 매수할 수 있게 해 적대적 M&A 세력의 지분을 일시에 희석시키는 제도다. 정부는 포이즌 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다만 “적대적 M&A는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진 해임 등 순기능도 있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추가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 일부 내용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주민 의원 등은 복수의 이사 선출 시 여러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줘 특정인이 선출되기 쉽도록 한 ‘집중 투표제 의무화’ 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투명성 제고란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입법례가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유럽 국가들과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박용진 의원 등이 발의한 ‘전자투표 의무화’ 제도에 대해서도 “전자투표가 불필요한 소규모 회사에도 강제하는 불합리가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